수지타산(收支打算)이야 어떻든 농사보다 더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천(天) 지(地) 인(人)의 조화와 정성이 어우러지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가을 들판에 펼쳐진 황금의 물결은 160여 일간 시한부 작전을 세운 농민들의 숱한 애환과 온갖 정성이 담긴 땀의 결정이다.
그런데 이 농사에 가장 괴로운 것은 잡초 제거 작업이다. 한 이삭의 벼를 피우기 위해 기울인 농민들의 정성은 실로 용의 주도 하지만 그래도 벼 이삭 사이를 헤치고 농민들의 뒤통수를 치고 나오는 것은 ‘피’라는 잡초이다.
농민들을 괴롭히고 벼를 해치는 것이 어찌 ‘피’뿐일까 마는 유독 ‘피’가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위선(僞善) 때문일 것이다.
모든 잡초가 처음부터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지만 피라는 놈은 애당초 벼를 가장하고 나오므로 그 식별이 대단히 어려울 뿐 아니라 벼와 같은 성질의 화본과 식물이므로 웬만한 농약 따위로는 제거할 수 없는 골칫거리이다.
결국, 벼포기 사이에서 농민들의 쏟는 온갖 정성과 보호를 받으면서 철저히 벼 행세를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비로소 본색을 드러냄으로 농민들의 고혈을 짜는 것은 물론 신의에 대한 배신감마저 느끼게 하는 식물이다.
위선(僞善)이 특히 미움을 받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자기 모습을 드러낸 잡초들은 차라리 솔직한 면이라도 있지만 철저한 위장으로 모양과 성질까지도 벼를 가장했다가 최후의 순간에 본색을 드러내는 ‘피’의 간교함과 교활함은 “대간(大奸)은 충신(忠臣)과 구별이 어렵다”는 옛말을 연상케 한다.
언제부터인가 ‘피’를 제거 소탕하는 ‘피’ 사리 작업이 농민들의 손을 떠나버린지 오래되어서 지금 들판을 보면 ‘피’가 오히려 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어떤 곳에서는 ‘피’ 농사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농심은 어디로 갔는가? 농심은 타산(打算)을 생각지 않는다. 오직 한 톨의 곡식이라도 아끼고 가꾸는 정성과 근면함이 있을 뿐이다. 농심은 비록 시간을 뺏기더라도 ‘피’는 용서치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잡초는 용서할지라도 기만과 술수에 능한 ‘피’만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늘과 땅은 모든 장단(長短)을 선택케하여 그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인간 의지로 확연히 구별되기 어려운 사이비(似而非). 그것은 곧 참을 해치는 것이므로 최대의 공적(公敵)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위선(僞善)은 참선(眞實)을 해치기 때문에 더욱 가증(可憎)스러운 것이며 사이비 종교는 성현(聖賢)을 등에 업고 참 종교를 위장함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 함이 심히 큰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피’가 없는 들녘을 가꾸는 농심이 되살아나야 한다. 우리 모두 농심으로 돌아가 ‘피’ 사리를 잘했을 때 우리 조국이나 동포사회에서 가장 성실한 한국인으로 성장하며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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