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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캠시음식축제’가 열린 캠시 지역은 하루종일 왕래하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축제의 본거지인 안작몰 인근의 거리는 각양각색의 인종들로 붐벼 정말 다문화 도시의 전형을 눈으로 실감하는 듯 했다. 도로 양쪽을 가로막고 설치된 가판대 행렬에는 타국의 이색적인 맛을 느껴보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 공연무대 앞에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감상하려는 관객들로 운집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캔터배리 카운슬의 홍보 전단을 보면 ‘캠시음식축제, 시드니의 서울’이란 명칭이 사용됐다. 공연 순서에도 한국의 부채춤과 북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드니의 서울에 ‘한국인’이 없었다. 노상에 설치된 수십개의 가판대 중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은 5개에 불과했고 거리의 행인들도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99년 ‘시드니 관광의 달’의 일환으로 지역 특색에 맞는 축제를 장려한 NSW 정부의 정책방침에 따라 캠시상우회가 주축이 되어 ‘한국음식축제’는 첫 발을 내디뎠다. 소수민족 음식축제의 기치아래 처음 열린 ‘한국음식축제’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2003년까지 대표적인 교민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첫 해에 8천 여명의 주민이 참여했던 행사는 개명되기 직전인 2003년에 ‘Korea Week’로 지정, 기간을 3일로 연장하며 2만 여명이 다녀감으로써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전세계에 선양할 성공적인 행사로 정착되는 듯 했다. 가판대는 한국인 일색이었으며 거리는 정말 ‘시드니의 서울’로 손색이 없었다.

고객의 발길을 붙잡는 음식, 음식을 사가는 고객과 판매하는 상인, 행사를 진행하는 요원 등 축제의 중심에 한국문화와 한국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먼 타국에서 한민족의 숨결을 느끼고 문화의 향기를 곳곳에 전파한다는 자긍심 속에 우리는 하나가 되었고 행사에 참가하는 모든 교민 개개인이 홍보사절 역할을 했다. 이민 1세대들은 호주 방방곡곡에서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날아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5년간만 지속된 한국음식축제였지만 ‘한국’이란 이름아래 백의민족의 일체감을 확인했고 고향의 인심을 맛볼 수 있었으며 한 핏줄의 의미를 되새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세계 여러 민족의, 국가의 음식을 한 곳에서 구경하고 맛보는 흥겨운 행사인 캠시음식축제에는 그런 ‘한국적’ 요소들이 모두 상실되어 버렸다. 어디를 눈씻고 찾아봐도 한국인의 자부심을 내세울 만한 ‘우리 것’이 없는 듯 했다. 한국과 캠시라는 단어 하나 차이에 한인들은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시의회에서 제정한 ‘한국음식축제’를 시의회의 정식 인준절차도 없이 행정적으로 개명한 로버트 푸롤로 캔터배리 시장은 “60여 민족이 살아가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명칭 변경”의 명분을 내세우며 “행사의 주체는 한인사회”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개칭 후 동포사회의 관심과 참여가 완전히 실종된 상태에서 그의 ‘말뿐인 한인 배려’는 너무나 공허하게 들린다.

이날 가판대를 설치한 교민들은 다같이 “어떻게 된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음식축제’란 명칭이 없어진 것은 너무 아쉽다”며 “교민들이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소와 시기와 가판대는 동일하건만 가판대의 주인과 모여드는 고객과 구경하는 행인들은 낯선 얼굴로 가득찬 행사장. 활기찬 주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쓸쓸한 주변인으로 만 남게된 한인들.

돈 주고 살 수 없는 교민 화합의 장이자 한국 문화의 상징인 알토란 같은 ‘한국음식축제’가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잃어버린 소중한 이름을 되찾아 한국문화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한번 재현해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권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