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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문학공간'127

  1. 2012/02/07 이스트우드의 밤
  2. 2012/02/07 변명
  3. 2012/01/25 흑룡의 해를 여는 새아침에
  4. 2012/01/25 통일(統一)의 염원
  5. 2012/01/11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6. 2012/01/11 순백의 꿈
  7. 2011/12/20 나는 유언할 게 없는데
  8. 2011/12/20 철거를 시작하려오
  9. 2011/12/13 솔개
  10. 2011/12/13 순간의 깨달음
  11. 2011/12/06 출근길
  12. 2011/12/06 삼대 장터 나들이
  13. 2011/11/29 나방이의 일생
  14. 2011/11/29 행복한 아침
  15. 2011/11/23 바람에 날리며
 

수필가: 문육자

<>한국수필가협회회원

 

 

호주에서 갖게 17 ()한국수필가협회 해외 심포지엄 낭독의 밤’ 째날 이었다. 전날 한인회관에서 세미나와 심포지엄이 있었지만 ()호주한국문학협회 회원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얘기들을 나눌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러기에 다음날 만났을 때는 처음인 가슴이 설레었다. 공유할 있는 언어가 있고 감정이 있으며 당사실처럼 풀어낼 이야기들이 많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남의 장소는 한인(韓人) 중국인들의 상가가 즐비한 동네 이스트우드에 자리잡은 아리산이라는 음식점이었는데 건너편 학교 마당에는 보랏빛 자카랜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들은 여름을 알리는 꽃에서 고향을 느낀다고 했다. 보라색이 주는 몽환 같은 이미지 탓이리라. 어느 하나에도 고향과 고국을 결부시키고 싶지 않으랴. <버리고 간들, 쫓겨 간들> 어찌 잊겠는가. 탯줄인데...

낭독의 밤이었지만 귀담아 음미하기보다는 말이 고픈 사람들이라 이야기 나눌 시간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회자는 어색하지 않게 작품 낭독을 적당히 잘라 버리고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을 갖게 했다. 테이블마다 고국의 문인과 현지의 문인들이 섞여 앉은 탓에 이야기꽃은 자연스레 만발하게 되었다.

흥을 돋우는 K수필가의 멋들어진 () 와인만큼이나 취하게 만들어 대청마루에서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같았다.

 

그들은 질곡의 세월이든, 글로벌 시대에 놓여 있는 현재의 상황이든 모국어로 자신의 정서나 사상을 유려(流麗)하게 표현할 있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모국어로 표현할 있는 문학이 그들에겐 없는 위로였다.

타향의 하늘, 일터에서 정신 없이 일하다 느끼는 배고픔 같은 갈증. 만삭의 아낙이 쉬이 몸을 풀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처럼 목젖에 걸려 있는 언어들을 뱉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의 여정이 쉽고 평탄한 길이 아니기에 함께 풀어야 공동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타국이기에, 힘이 되어 단체나 활동무대가 좁은 것이 애로였다.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문학의 길로 들어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역의 땅이라면 호주라는 나라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인 같았다. 캐나다로 이민 친구도 그러했으니... 친구에게 보내려고 글을 생각했다.

무던한 삶에 응석 부리듯 / 그대는 떠나갔지

생활의 옹이 어루만지며 / 마음밭에 심어 육사의 청포도 대신

반액대매출의 사과나무를 사다 심으며 /자유를 키우는 친구여

국어 선생보다는/ 슈퍼마켓 여주인이 수월해 보이건만

모국어가 저리도록 마려워 / 괴고 앉아 이역 이야기

굽이굽이 말아 보낸 친구여......

친구는 말이 마렵고 고프다고 했다. 그러던 친구는 새록새록 새롭게 다가오는 모국어로 시집을 보내왔다.

 

호주에 있는 그들도 그랬다. 모국어로 꽃피우는 문학, 문학의 전령사가 되어 우리의 혼을 이국의 땅에 심을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꿈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유년이었다. 아니 고국에서의 눈물이었다. 펼치고 싶은 날갯짓이었다. 날갯짓의 시작은 구절양장의 아픔과 시름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문을 열었지만 이젠 그리움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절제된 망향의 정을 희망찬 내일의 바탕으로 삼아 모국어를 값진 문학으로 꽃피우고 있었다. 격랑의 세월 속에서도 이어갈 호주에서의 ‘한국문학’을 위해 그들은 한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역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으니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들의 방문은 한국수필의 현주소를 알림에도 있었지만 그들이 어려움 속에서 연면(連綿) 우리문학을 이어가는 역할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는지도 모른다.

 

손에 들려진 ‘호주한국문학’(통권 4)에는 그들의 자부심처럼 한국의 얼을 지키는 순수문학지라고 씌어 있었다. 그것은 속에서 캐어낸 보석들이며 그들은 바로 정련사(精鍊師)였다. 우리의 문학이 그곳에서 튼튼하게 뿌리내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끊을 만큼 소란 떨듯 울어대는 새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라면 쌈질이라도 한다고 느낄 만큼 요란했다. 새의 이름을 물었더니 저녁이면 귀소본능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시끄럽게 재잘대는 ‘진홍잉꼬’란다. 온종일 일어난 일을 그들은 노래로 읊고 있었다. 호주에서의 한국문학이 굳건히 자리 잡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을 노래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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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문화공간/문학공간 | 2012/02/07 15:08 |

시인:김은희

<>호주한국문학협회 총무위원



블루 마운틴 암벽처럼

눈감고 귀 막아

등지고 섰다 해도

끝도 없이 불어오는 바람

내려앉은 가슴 이려나

 

열 번의 거듭 을 찍어내도

꺾어지지 않는 이기의 나무

깊게 내린 욕심의 뿌리 탓인가

 

싸리비 자욱마다

먼지처럼 남아 쓸려지지 않는 욕망

지문처럼 늘어붙어 악취를 풍긴다해도,

어찌할 수 없다

 

우린 천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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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한판암
                                    (경남대학교
교수)

 

상서로운 서기를 내뿜는 흑룡이 새해의 문을 열어 드디어 임진년(壬辰年)의 찬란한 서광과 돋을 볕이 온 누리에 충만한 희망찬 아침이다. 예로부터 용(dragon)은 만물의 조화, 벽사(辟邪), 수호의 재능을 두루 겸비한 영물(靈物)로 여겨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는 현실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동물을 비롯하여 상상의 세계에 온갖 동물의 능력이나 재능을 두루 발췌해서 합성하여 창조된 영험한 신물(神物)이다. 영물인 용의 해에 꿈과 희망으로 설레는 봄이 저만치 다가오는 계절이다.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일 년의 계획은 봄에 한다고 했다.

큰 꿈과 푸른 희망이 하늘로 치닫는 욱일승천의 기상이 온 누리를 뒤덮은 흑룡의 해에 대춘부(待春賦)를 생각한다. 겨우내 잔뜩 웅크리고 새봄을 기다리던 옛 등걸에 움이 트고,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돋아나며, 마른풀 무더기엔 새싹이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환희의 계절이 기다려짐은 산천초목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본바탕에서 궤를 같이 하리라. 지고 지순한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한편 문학적 성취와 순수한 영혼을 갈구하는 뜨거운 가슴의 동도(同途) 제위에게 매일 매일이 새롭고 알토란 같은 결실 거두는 보람과 행운이 넘쳐나는 한 해가 되길 빌고 또 빈다.

 

순리와 억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온몸으로 그 진솔한 차이를 배워가는 터득과 깨달음 과정이 바로 우리 범인들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배한다. 그런 편린과 흔적에 세월의 더께를 감출 수 없다하더라도 달관이나 관조에 이르려면 아직 까마득한 모양이다. 세상 경험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생의 모퉁이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생뚱맞은 난제나 곤혹스러움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평온한 마음이나 웃는 낯으로 바라 볼 자신이 도통 없다. 언제쯤이면 슬기롭게 극복하여 무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현자가 아닐지라도 동행하는 모든 문우들이 하늘의 이치인 천리나 자연의 섭리를 제대로 꿰뚫어 통섭(通攝)에 다다라 거리낌 없이 상호 소통하는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치열한 삶의 이치를 생각해 본다. 가을에 씨를 뿌리는 보리와 밀을 이른 봄에 파종하면 이삭이 제대로 출수(出穗)하지 않아 낱알이 영글지 못해 결국 폐농(廢農)에 이른다. 이들은 가을 들녘의 밭에 파종되어 겨우내 기온이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땅이 얼고 녹기를 되풀이 하며 끝없는 단련과 혹독한 한파를 거뜬히 이겨내며 생물학적으로 형질이 변형되어야 결실에 이른다. 보리나 밀이 일정한 기간 동안 저온 상태를 경과해야 결실이 가능한 형질로 변형되는 현상을 버널리제이션(vernalization : 춘화처리(春化處理))이라고 한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삶에도 여지없이 같은 맥락으로 적용되리라. 삶에서 인고의 세월이나 모진 경험은 더더욱 튼실하고 알찬 얻음이나 깨달음의 계기가 되어 엔간하면 되레 약이 되는 경우가 허다함을 우리는 명백히 기억하고 있다.

 

예로부터 병이 피부에 있을 경우 ‘고약’으로, 혈맥에 자리 잡은 경우는 ‘침’으로, 더욱 진전되어 위장에 이르렀을 경우는 ‘탕약’으로, 그보다 더 심각해져 골수에 스미면 ‘귀신도 손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개인의 건강, 나라의 병폐, 크고 작은 모임인 각종 단체의 건전성도 같은 이치이리라. 이런 연유에서 순수한 정신과 문학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바탕으로 일궈온 문학의 밭에 문제의 씨앗이 잉태될 기미가 엿보이면 즉시 바로잡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야 튼실한 재목으로 건강하게 성장을 거듭해 세세연년 빛날 문학계의 기념비로 자리할 기틀을 다짐과 동시에 힘차게 굴기(崛起)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에 박은 듯 한 문구나 진부한 표현’을 뜻하는 클리세(cliche) 같은 말이지만 논어(論語)에서 이르는 내용을 음미하며 올 한 해 삶의 자세와 각오를 다지면 어떨까, ‘절실하게 묻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라.’는 의미의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의 철학을 생활의 바탕으로 삶을 영위한다면 원하는 바를 너끈하게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승이라 해도 가르침이 없으며, 도반이라 하더라도 말을 극도로 아끼는 경우처럼 스스로 깨우치고 터득하라는 뜻에서 방임하고 묵언으로 동행하는 모양새 그대로 올곧게 전해지길 소망한다.

 (2012년 1월 1일(壬辰年 元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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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나루/한광택
<사>호주한국문학협회회원





임진년, 비상(飛上)과 희망을 갖고

육십 만에 찾아온

용중의 용() 흑룡(黑龍)

인왕산 기슭에 앉아 한반도

분단의 서러움에 기함(氣陷)을 지른다.

통일을 위하여 애쓴 흔적이 많건만

아직도 풀지 못한 대한민국

지도상에 그려진 반동강난 모습

애처롭기만 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의 열망은 같은 밟고 사는

백의(白衣)의 민족, 언어를 쓰고

말하는 우리가 아니던가!

통일의 염원 사철마다 피어나고

까치 까치 설날의 노래

제주도에서 두만강까지 울려

아프고 서러운 국치민욕(國恥民辱 )

씻을 날 어서 왔으면.

 

통일 , 해결 과제두려움인가!

배고픈 동포 보듬어 사상을 뛰어넘고

전쟁 없는 평화의 통일.

상상만해도 콧노래 절로 피어난다.

세계를 향해 끝까지 관철시키는

용의 힘으로, 통일이여! 통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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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수필가: 香里/윤영남 교수

숭실대학교 평생교육학 박사

 

한국의 가을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높고 푸른 하늘을 보고 싶지만, 오늘따라 잿빛 하늘이다. 문득, 호주의 빠삐옹베이에서 바라 본 높은 절벽, 하늘과 맞닿은 해변의 절경, 내가 어설프게 한 마디씩 배운 원어들을 중얼거려 보고 싶었다. 본다이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울릉공 (바람이 머문 자리), 이런 말들이 어느새 추억 속에서 모양을 드러내듯 꿈틀거렸다. 여독으로 잠시 덮어 두었던 기억들이 선명한 그림처럼 고운 색채가 호주의 하늘로 나를 유혹했다.

벌써 물살을 가른다. 파도 위에서 곡예를 하는 환상적인 써핑의 자세가 돋보인다. 가르는 물결이 하얀 길을 만들어 내는 관경이 참으로 경이롭다. 저렇게 집채보다 큰 파도가 밀려와도 걱정이 없으니, 마치 바다를 아득하게 감싼 해변이 써핑의 천국 같다. 써핑을 하기에 아주 최적의 지형이 아닌가, 윈드써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다를 가르는 듯한 긴 해변을 나는 듯 높이 뛰어 올랐다가, 다시 중심을 잡곤 했다. 롱비치의 아늑한 76km 해변을 잠시 걷다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제야 비로소 골드코스트 (Goldcoast)는 바다가 줄 수 있는 최적의 풍성함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임을 알았다.

 

산호초 가루로 형성된 미숫가루처럼 고운 모래의 감촉, 하늘과 바다색깔이 일치하는 청명함은 여행객들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감탄사를 연발시켰다. 모래사장 옆으로는 언제나 바비큐를 누구든지 해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고, 잡상인은 일체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맨 발로 백사장을 걸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모래의 감촉은 말없이 통하는 내 육신과 자연의 속삭임이 깃든 밀어였기에…….

블루마운틴에서 세 자매 바위를 보면서 구 천년 전의 역사를 거슬러 지형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바다였던 곳인데, 지금은 기암절벽을 이룬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스스로 허물을 벗는 나무, 차츰 자라면서 껍질을 벗고, 수액을 전달하는 통로가 중심부에 있기에, 웬만한 산불이 나도 타지 않는다는 유칼리투스 나무가 밀립지대를 이루었다. 하늘빛과 바다색이 일체감을 이룬 곳이라 특이한 블루마운틴 이란 이름이 붙여졌단다. 자연 그대로 우거진 휴양림 속을 걸으면서 부럽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 야산에서도 자주 보던 낯익은 고사리 나무를 보고 마치 친정 큰아버지를 본 듯이 반가웠다. 한 아름이 넘을 정도로 큰 고목이 된 고사리나무는 분명 기후의 혜택이리라.

 

어느 나무와 식물도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할 것이다. 적당한 기온과 햇볕, 사계절이지만, 겨울과 여름은 각 한 달씩이니까 얼마나 좋은 기후가 되겠는가. 우리가 화분으로 키우던 벤자민 나무가 공원의 거목으로 넓은 그늘을 만들었고, 각종 식물들이 너무도 싱그럽게 자라는 모습이 직사광선과 더불어 청정해역을 뽐내며 우리 일행을 눈부시게 맞이했다.

금번 해외문학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호주(AUSTRALIA)에는 처음으로 방문했다. 시드니 공항에 내릴 때부터 타국에서 느낄 수 없는 불안감보다 여유로움을 느꼈다면, 마중을 나온 호주문학회 L회장님 내외분이 우리 일행을 무척 반갑게 맞아 주셨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이민자로서 사업상 쌓인 업무도 접은 채 많은 교민들이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심포지엄과 낭송회가 개최되는 공식적인 행사의 이틀 동안 서로 가슴에 곱게 접어둔 향수와 조국애를 서리서리 풀어내며 감사와 감동의 도가니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내가 등단 후, 수필가로서의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내놓을 작품다운 수필이 없음에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의 수필쓰기에 대하여 발표할 시간이 주어졌다.

나의 졸작 중에 <숭늉>을 쓰면서 내 마음 들여다보기와 내가 스스로 느꼈던 욕망의 빛깔을 짧은 고백으로 마무리를 했다. 나의 수필작법이란 내세울 것 하나도 없기에, 그냥 꾸밈없는 무채색의 숭늉을 대비시키며, 숭늉처럼 어떤 조미료도 가미하지 않고 자기다움으로 덕망을 갖춘 구수한 인간미를 추구하길 바라는 글감에 대한 얘기였다. 그런데 숭늉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때문인지, 여자 화장실에서도 그 얘깃거리를 잇곤 했던 교민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따스했다.

잡은 손을 놓기가 아쉬웠다. 보이지 않고 흐르는 지하수처럼 가슴속의 말없는 속삭임이었다. 서로 맞잡은 손길에서 느끼는 남다른 체온, 작은 눈빛 하나에서도 느꼈던 혈육 같은 정(), 내 나라 내 민족의 따스한 그 정감을 누구와 더불어 어디에서 느끼며, 또한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특히, 호주한국문학 제4집을 발간하는 축하의 시간은 감사했고, 감미로웠다. 호주문학회를 대표하는 이기순 회장의 시집에서 <환상>은 ‘뒤돌아서면 뒤섞이는 좁쌀 같은 내 기억 주머니….이국(異國)의 햇살에 출렁이는데, 환상(喚想)의 거울 속에선 시드니의 가을 꽃대 흐늘흐늘 걸어 나온다.’는 한 편의 시를 만나면서 교민들과 마음의 징검다리를 놓게 되었다. 그 순간은 아름다운 축복의 통로였다. 한 핏줄, 한 겨레로 하나가 되어 우리는 참으로 뿌듯한 행복함을 품었다. 또 선물로 받은 석계 안상기 시집 <나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펼쳤을 때, “들꽃 같은 인생”에서 ‘캔버라와 시드니를 오가는 고속도로 비탈진 산아래 바람이 머물고 간 자리인가’ 란 싯귀에서 느끼는 감동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시드니의 밤은 평화로웠다. 우리에게는 조용하면서도 아늑한 밤바다의 풍경은 작은 여유로 받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하버브릿지를 넘나들며 유희하는 박쥐들, 입 벌린 조가비를 연상하며 조각하듯 설계했다는 오페라하우스의 지붕,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실제로 느꼈던 여행객의 부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영화 제목처럼 잠 못 드는 시드니의 밤을 보냈다.

 

여행의 수준은 가이드의 역량을 넘기 어렵다 했던가, 첫 안내자로서 호주에 대하여 상식 이상의 설명을 상세히 해줘서 감사했지만, 이민 차세대로서 한국의 국방의무를 솔선수범으로 형제가 거뜬히 마쳤다는 고백에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랬다. 기장으로 은퇴하신 부친을 따라 이민을 했다고 해도, 군대를 다녀와야 대한의 사내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는 그 자신감이 넘치는 순발력과 당당한 모습에 우리는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다. 또한 두 번째 만난 가이드가 남긴 한 마디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저렇게 파란 하늘을 그대로 파랗게만 봐 달라”는 부탁이다. 감정세포가 막힌 사람은 이성을 못 느끼듯, 세상의 어느 한 단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순수함을 소중히 간직하라는 부연 설명도 덧붙였다. 마무리 설거지를 하러 나왔지만, 호주의 좋은 추억을 담긴 그릇을 깨지는 않겠다며, 그는 한 바탕 웃음을 퍼뜨렸다. 파란 하늘을 파랗게 볼 수 있는 수필가들, 그런 여러분들과 동행하는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말. 그 말의 뜻은 지금도 음미할수록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고호의 엘로우 보다도, 샤갈의 블루보다도, 한국인의 까만 눈동자가 더 아름답다는 백남준의 남긴 한 마디를 떠올려 본다. 국제적인 화가의 예술혼이 깃든 시드니의 미술관과 고전적인 건축양식에서 성스러움이 물씬 풍겨나던 성당에서 받은 경이로운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눈부신 태양, 청정해역으로 둘러싸인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커다란 대륙, 시드니 공항을 이룩할 때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손을 모았다. 언제까지나 내 몸체와 문체의 건강함이 공존한다면, 고운 색깔의 추억으로 j간직하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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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수필가: 나향/이기순

<>호주한국문학협회 회장

미래를 대비하고 창조하며 

일로매진(一路邁進)을 기원하는 흑룡      

꿈틀꿈틀 순백의 내란을 꿈꾸듯

여의주가 검붉게 빛난다.

삶을 풀어 놓은 대지에 금빛 스며들고     

가슴속에 침잠한 선하디 선한 언어(言語)

서로를 감싸는 한 해를 기원한다.     

 

 임진년 새해에는

이루고픈 소망 다 이루소서

이 복된 세상 아름답게 열어가소서

모두에게 행복한 미소 넘치게 하소서

 

새해의 첫 다짐들

순탄한 길로 빛나게 하소서

순백의 눈꽃처럼 순수한 날들이게 하소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가슴과 가슴이 아름답게 보이게 하소서

 

삶의 길 위에서

힘든 시련 만날지라도 그 이유,

그 누구도 탓하지 않게 하소서

성숙하고 넉넉한 마음이게 하소서

삶의 향기 익히는 가슴이게 하소서

생명의 존엄성을 알게 하소서

어지럽고 멀미나는 이세상 지칠 때마다 

따뜻한 언어로 서로의 가슴을 데워주소서

하루하루 소중한 추억 엮어가게 하소서

이세상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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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수필가: 나향/이기순

<>호주한국문학협회회장

 

인간에겐 누구나 한평생 차고 살아갈 삶의 주머니가 있다. 주머니를 차고 있는 자신마저도 그 주머니의 크기는 잘 모른다.

아마 자신에게 채워진 주머니의 크기를 미리 알고 살아간다면 삶의 질서가 잘 지켜질 것인지, 아니면 깨어질 것인지,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인지, 아니면 낮아질 것인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가 투명한 유리알처럼 다 들여다보인다면 좋아서 날뛰는 인생도 있을 것이며, 어떤 인생은 비참함과 억울함으로 비통해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종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터인데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선 인간에게 미래라는 단어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결속시켜 그런대로 살아볼 만한 것이 생이 아닌가 싶다.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순간순간마다 감사요. 희망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과거요, 과거는 비참하였던지, 아름다웠던지, 그 또한 추억이다.    

모든 인간의 본질은 흔히 말하는 웰빙을 추구하는 것이다. 비록 현실적으론 실현되어지지 않을지라도 인간이라면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것이 희망이요. 욕망이 아니겠는가,

 

내 친구남편은 말 그대로 자수성가의 표본인 사람이다. 형제들에게 같은 업종의 사업체를 몇 개씩 가질 수 있는 중류층으로 일으켜 놓았으며 지역에선 손안에 꼽힐 정도로 부자이면서도 검소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젊은 시절 일밖에 모르던 남편은 이순(耳順)이 넘어서야 외국여행도 일년에 한두 번 다니고 늘그막에 부부동반의 기회도 가지면서 나름대로 행복한 부부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친구의 불만은 아직까지 알 수 없는 남편의 속마음이란다.

몇 십 년을 한 이불을 덮고 살면서도 남편은 한번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법이 없단다. 특히 여자가 제일 알고 싶은 (경제권)에 대해선 의논은 물론 일언반구(一言半句)이니 고리짝속보다도 깊고 깊은 그 속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녀의 남편은 특이하게도 외국여행이나 국내여행이나 일단 비행기를 타게 될 때는 자녀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놓고 유언을 한단다. 어디어디에 무엇은 누구 의 것이고, 어디에 있는 어떤 땅은 누구의 것이고, 무엇은 어떻게 하고, 무엇은 엄마와 의논하고…….여행을 떠나기 전날이면 남편의 유언에서 대략 얼마의 땅과 돈이 있겠구나! 상상으로 느낄 뿐, 아무도 직접 보았거나 그 이전엔 들어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물론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부턴 다시 그 고리짝 같은 마음의 열쇠번호는 반드시 바뀌어지고 다음 여행이 있는 날까진 그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도 않을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남편의 여행지에 따라 그렇게 몇 번의 유언으로 이어져왔을 뿐, 남편의 마음속 주머니엔 무엇이 들었는지 무슨 생각을 넣었는지, 죽기 전엔 모를 것이란다. 혹여 자신이 먼저 죽기라도 하면 영영 모를 것이겠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깊은 뜻이 있지 않겠는가, 뭔가를 숨겨 놓고 자녀들에게나 마누라에게 희망을 주면서 살아가는 그만의 희열을 자신만이 알 것이기에…….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모르고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모르면서 부부라는 끈으로 묶어져서 살아간다면 일심(一心)은 없고 동체(同體)만으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부부들을 보면서 최소한 부부 만이라도 서로의 삶에 주머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마음주머니 그 속 일부만이라도 알고 살아간다면 어떨까,

혹자는 부부라는 개체도 제 각각인데 모든 것을 너무 알아버리면 도리어 어두워진다고 한다.

 

옛날에 평생을 사이가 좋기로 소문난 노부부가 있었다.

자녀를 6남매나 두었지만 모두 성장하여 각자 도시에서 잘 살았으며 노부부만 시골집을 지키면서 살았다. 

부부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주머니 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자녀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다 보니 부부에게 남은 재산이라곤 늙고 병든 육신뿐이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에게 그 고통을 이야기를 하는 부모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자녀들은 좋은 대학 나왔고 그런대로 잘 살면서도 부모에게 변변하게 용돈은 고사하고 생활비 한번 선뜻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부모가 무언가 남겨 줄 것이나 있을까 하고 고향집에 올 때마다 눈치만 살폈다.

어느 날 서울에서 잘산다는 둘째 아들내외가 왔다.

노부부는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일찌감치 잠자리든 부부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건너 방의 아들내외가 들릴 정도로 의식적으로   

“여보 영감, 이젠 아이들 다 모아 놓고 유언을 하는 게 좋겠지요?

“무슨 소리야, 아직은 유언할 때가 아니야. 우리에게 제일 잘하는 놈에게 주고 싶으니 할멈도 그리 알고 누가 우리에게 잘하는지 눈여겨보시오?

“저 장롱 속에 들어 있는 도자기만 해도 얼마요. 그때 그 도상이 우리한테 값을 쳐준다고 했을 때만해도 몇 천 만원이니 아마 지금쯤 모르긴 해도 1억은 넘을 걸 안 그래요?

안방의 노부부가 소곤소곤 주고받는 이야기를 옆방에 있던 며느리의 귀에 들리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 다음 날부터 며느리와 아들의 달라진 모습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향집을 들락날락 하는 것은 물론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이며 옷가지며 용돈까지 인심이 달라졌다. 노부부는 자식들이 오는 날이면 가끔씩 도자기를 살짝 꺼내어 닦았다 다시 장롱 속으로 넣곤 했다.

그 소문이 어떻게 돌았는지 자식들은 번갈아 가면서 고향집대문에 발을 걸쳐 놓고 어떡하면 부모에게 더 잘 보이려고 가식적으로 공들여 몇 년을 투자했지만, 부모님이 넘겨 줄 기미가 없자 여자의 심리 그 미묘함이 발동하면서 며느리들은 서로 질세라 더더욱 기를 쓰고 노력을 했다.

 

세월이 흘러 영감님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영감님이 떠난 후에도 할머니는 영감님과의 약속대로 마지막까지 부부가 같이 나누었던 가짜 도자기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할머님도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은 뒤늦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고 얼마나 자신들의 행동이 섭섭했으면 그토록 정직했던 부모님들이 거짓주머니를 만들 생각까지 하셨을까! 크게 사죄하였다고 한다. 한편으론 부모님의 그런 지혜로 몇 년 동안 열심을 다했기에 부모님 떠나 신 후에 자식으로서 뼈아픈 회한을 남기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즈음 같은 웰빙세대를 살아가는 일부의 자녀들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부모님께서 자신들을 속인 사기꾼부모라고 말하지나 않을지?

 

인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주머니가 있지만 너나할것없이 오늘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아무리 큰 주머니를 무겁게 차고앉아서도 욕심보가 함께 달려있다면 무겁다고 말하지 않는 것만 봐도,

나와 가까운 사람 중에도 끝없이 욕심주머니를 차고앉아서 무거움도 모르고 더 집어 넣으려고 안달복달하는 불쌍한 인생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불안함의 색깔을 띠고 있으면서 초조의 냄새가 온 몸을 휘감고 외로움을 자초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겐 살아간다고 말하기보다는 가진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이를 악물며 버티어간다는 말이 정답일 것이다.

진솔함이 무엇인지, 진정한 희망이란 어떤 것인지, 가볍게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물론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열심히 주머니를 채워 놓고 그 주머니를 지키려는 건강한 정신이야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자신의 욕심 주머니를 채우기 위하여 남의 주머니를 강탈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하긴 나 같은 사람이야 아무리 높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탄다 하더라도 유언이고 뭐고 할 것도 없거니와 겉 주머니건 속 주머니건 다 보여 주고 텅텅 비어있으니 유언이고 뭐고 할게 없다. 속 빈 강정이니 노후가 걱정되긴 하지만 그 또한 내 성격이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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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김은희

<>호주한국문학협회 총무위원

 

 

더이상 고집을 부릴수는 없었다오

억지는 사실 무리였다오

오랜시간 흘러온 검은 강을

무엇으로 막아야할지 아득하였오

어느 용맹한 용사의 화살도 넘을수 없었고

반갑지 않은 소나기를 피해 열병도 막았다오

언제부터 세워진 견고한 성인지 때는 알수 없지만

칸나 옆자리의 잔디처럼 조금은 긴 한숨을 토할수 있었다오

그러나,

눈을 감아도 더욱 선명해지고

귀를 막아도 어김없이 고막을 헤집는 심장의 비명

피부위에 곰삭은 실로 바느질한 그림자

이드녀석을 모른척한 벌칙은 꽤나 매서웠다오

오랜시간 쌓아올린 사념의 성은 만만치 않게 견고할터

단 한가지 욕심만 아니였다면, 웅크린채 모른척 했을 것이오

나에게 맞는 향기

나에게 어울리는 소리로 살기 위해

내 껍질속에 숨은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기위해

마악.....

철거를 하려하오

잔가지 뿌리를 걷고 일어서 보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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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

문화공간/문학공간 | 2011/12/13 15:26 |

시인:김은희

<>호주한국문학협회 총무위원

 

고통을 저당잡힌 선택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비우고 비운 가슴으로 날아오른 푸른 물가

숨길수 있는 건 떨리는 마음뿐

외려 더 힘찬 날갯짓 바위는 무릎을 꺾는다

 

깨어진들, 부서진들,

내 입술을 어루만지는 햇살

너는 여전히 화사하구나

 

작은 숨소리 움켜쥐던 날카로운 노래

찰나의 망설임도 허하지 않던 잔인한 내 발자국,

묵묵히 붉은 꽃잎을 떨군다

 

스쳐간 시간만큼 겹겹이 두른 껍질쯤이야

쉽게 벗으련다

여윈 내 어깨에 가시나무 잔가지조차 겨워도

시간의 끝 저 멀리 희미해 가늠조차 할 수 없어도

문신처럼 새겨진 기억은 온전한 나의 것이기에,

 

사십의 거저 주어진 축복을 건너

사십의 아픈 선택을 온몸으로 견디련다

사십의 설렘을 허락 받는 그날

………

 

아마도,

맑은 바람이

토닥 토닥 젖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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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이양원

<>호주한국문학협회 퍼스지부장


몇 방울의 비가 머리칼 속으로 스며든다. 이전 같으면 머리 숱이 있어서 그냥 머리채를 흔들면 떨어질 것인데 오늘 느낌은 예전과 다르다.

그래서 위를 쳐다보게 되었는데 건물처마에 이어있는 빗물홈통에 녹이 슬어서 그 한 부분이 많은 비가 새고 있지 않은가,

사무실컴퓨터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온다.

상담이 끝나고 차 한잔하자는 권유에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비를 맞을 때마다 그 비가 머리 숱을 지나 머리피부에 닿더니 기어이 얼굴 앞 이마의 능선을 따라 코 앞으로 하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를 우선 닦으려는 순간, 차를 마시자고 했던 말이 민망했던지 손님이 한마디 한다.

“우산을 갖고 오실걸 그랬어요. 순간 그분의 얼굴을 보니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침에는 날씨가 화창했어요. 예상치 않았던 기후 변화에 못마땅한 표정이다.

비가 그다지 많이 내리지 않은데 나만 우산이 필요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커피숍이 바로 20미터 정도이니 괜히 접었다. 폈다. 하는 일도 귀찮기도 하고 요즘 들어 내가 아끼던 우산이 말을 잘 듣지 않고 심술을 부린다.

접었다고 생각하고 구석에 놓아두면 잠시 후에 저절로 펴지기를 반복하니 수명이 다 된 것 같아 더 이상 사용을 하지 않았다.

지금껏 우산 값에 따른 채무 채권관계를 궂지 따지려면 큰 돈인 것 같아, 더 이상 우산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었는데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하여 사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사용하던 자동우산이 아닌 수동으로다가,

아무리 명품이라 할지라도 한번 고장이 나면 더 이상 사용불가이니 낙점이다. 버튼만 누르면 쫙 펴지고 닫으면 저절로 다시 펴지지 않게 고안된 것으로 사야겠다.

애석하지만 이렇게 쓰레기로 버려지는 물건들이 아깝기도 하고 물건의 소중함을 모르는 마음들이 안타깝다.

손님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평소에 빗을 가지고 다니진 않지만 오늘따라 빗이 필요함을 느낀다. 작은 빗 하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겠다. 마침 내 앞에 앉은 손님이 여자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피씩 웃으며 “근래에 제가 머리 숱 성장 속도가 더딘가 봅니다” 그런 내 말에, 사뭇 심각하게 그분이 말한다. “그래도 이 원장님은 아직도 머리 숱의 모양이 멋지고 하얀 색깔의 쉰 모습이 어울립니다. 자연적으로 파마를 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는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뭔가 복선이 깔려있는 듯 하다.

“아닙니다. 사실 아까 비를 맞으면서 빗물이 얼굴 앞으로 곧바로 스며들면서 얼굴을 적시기에 갑자기 처량해졌습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면 머리에 힘이 없어지고 빠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으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네요.

“상심하셨군요 이 원장님”

“그래요, ……”

“일과 끝나시고 소주 한잔 하실 것 같네요”.

“ 그렇게 보여요?

“그럼요, 그럼 7시에 찾아 뵙겠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가끔씩 저녁과 술 한잔을 같이 하였기에 굳이 거절은 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되는 자화상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하면서도 그날따라 은근히 저녁 시간이 기다려진다.

나와 동년배인 그분과는 서로 숨길 것 없이 자녀들과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문제를 보면 그냥 지나는 심성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공통분모로 우리의 대화는 입체적이다.

식당 안에는 이미 비를 사랑하고 비에 찬미를 덧붙이기 위해 핑계 삼아 술 한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들떠있는 분위기다.

조용하게 둘 셋이서 마시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호탕하게 웃어 제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자기의 이야기쯤이야 비밀이 아니라는 듯 술 한잔을 들이키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분위기가 덥혀지고, 식당주인의 특별 배려인 듯, 습기를 제거하는 더운 바람이 에어컨디션에서 나온다.

밖엔 겨울비가 간간히 오락가락 밤바람을 탄다.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의 옷을 보니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다.

얼굴에 홍조를 띤 그분은 실내온도 상승이 못마땅한지 술맛은 좋으나 머리에 땀이 나서 신경질이 난단다.

“세수 한번 하시지요” 나의 의견에 양 미간에 살짝 긴장이 돈다.

“글쎄요, 이 원장께선 덥지 않으세요?

“그래서 이렇게 웃옷을 벗고 있지 않습니까?

“아, 저는 웃옷이 문제 아닙니다. 글쎄요 이게, 그러니까 ………………음, 이게 문제라니까요”

연신 물수건을 들고 이마를 닦는다. 실수로 그만 가발을…….순간 머리 전체가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아차, 그분이 머리 가발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아하 그동안 내가 실수를 하지 않았던가, 짐짓 눈치를 살핀다. 낮에 커피숍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영화필름처럼 갑자기 이어지면서 혼자 헛돌며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럴 때 누군가 영상속도를 줄여주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내 머리 숱이 없어진다고 푸념을 잔뜩 늘어 놓았으니…….한번 내뱉은 말을 다시 담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갑자기 즐겁게 마시던 술이 속에서 부글거리면서 입안이 소태를 씹은 것 같다.

“이 원장님의 머리는 쉽게 빠지지 않을 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저는 이 가발이 벌써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서투네요”

냉장고에서 찬 소주 한 병이 다시 우리 앞에 나왔다. 그 분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주가 고속버스 고갯길 내려가듯 내 마음에 전해진다.

그분도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겠지만 바깥 출입을 할 때만 가발을 사용하는가 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적으로 잃게 되는 머리카락 상실에 대해 나름대로 미학적으로 표현하면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 분은 어떠하였을까? 더 이상 나의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다려서는 아니 될 일이다.

누군가에게 던지 한마디의 미안함, 후회, 창피함에 그분의 얼굴을 제대로 못보고 술잔만 비우고 있었다.

“이 원장님, 아주 시원합니다”

가발을 벗어서 웃옷주머니에 가지런히 넣고는 하하하 웃어넘긴다.

옆 테이블의 손님이 한 몫 거둔다.

“멋 있으신데요? 호주의 가뭄으로 이게 더 심해지더군요. 물을 제때에 주지 못해서 그런지…….이게 말이지요”

그분은 양쪽 귀 옆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펴 보이면서 “그나마 가발이 있어서 겨울에 따뜻하고요. 여름엔 태양을 가려줘서 시원합니다요"

정말 멋진 표현으로 한방 날렸다.

그리곤 옆 테이블의 젊은 분들과 술 한잔씩 나누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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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문화공간/문학공간 | 2011/12/06 13:59 |

<>호주한국문학협회 총무위원 김은희

 

  

까만비 꾸무적거리는 그린에이커

그르렁거리는 밴을 토닥인다

거친 입술의 아내가 쥐어준 아이스박스

토막 난 총각김치가 투나 샌드위치 사이에서 위태롭다

춤을 추며 머릿속을 헤집는 꼬량주는

누우런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만 못했다

어젯밤 가슴에 난 생채기 애써 설익은 이슬에 씻어보는데

게으른 별 두어녀석 못나게 깜박거린다

 

어깨보다 여윈 다리를 끌며 담뱃내 끈적거리던 아비

빙의조차 허락지않는 마른장작 같은 내가 서운타

당신의 막내 닮은 희멀건 보스는 오늘도 아픈 말을 때리려나

검붉은 힘줄은 닮았으나 푸른 우물을 가슴에 담지 못한 나,

땡큐 파든 만 주절거리며 고개를 떨구겠지

빌어먹을 헬로우……

 

시간의 옷을 겹겹이 입고

당신의 깊은 우물이 내 안에서 푸른 강이 되어 흐르면

내 아내의 입술에 핏기가 돌고

내 아이의 눈에 더 많은 그림이 담기겠지

껌벅거리는 신호등 아래 가슴을 껌벅거리며 오늘을 여는 사내들

밴은 꽤 씩씩하게 애버리지너 그녀의 노래가 스며든 거릴 내달린다.

 

그래,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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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한국문학협회 수필가 : 정혜진


표면이 고르지 못한 재래시장 골목길에 고여 있는 구정물을 손녀가 혹여나 밟을까 손을 꼭 잡고 ‘조심해라 구정물 튄다’를 되뇌는 외할머니. 아랑곳없이 삑삑이 소리 나는 신발에 더욱 신이 난 손녀딸…….그 뒤를 창피하다는 듯 우아 떨며 쫓아가는 호주 사는 첫째 딸 나.

오랜만에 내려온 고향. 그것도 추억이 있는 큰 재래시장에 들렀다. 친정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어린 딸 모녀삼대가 ‘삑삑 삑삑’ 요란한 소리로 휘저어대고 행주치마 두른 시장 통 아줌마들의 관심이 싫지만은 않다.

대구 중심가에 자리 잡은 칠성시장은 중형도매시장이면서 먹을거리가 싼 곳으로 유명하다. 엄마들이 아이 옷 한 벌 사기 위해서 시장 몇 바퀴를 돌면 그 뒤를 다리 아프다고 질질 짜면서 쫓아다니는 어린 딸을 종종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어릴 적 내 동생들과 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종목이 좀 달랐다. 세 딸이 족발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때면 아버지는 외식을 가기보단 일주일 안에는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족발을 까만 봉지 한가득 사 오셔서 딸들이 향후 3년 동안은 족발 소리 못하게 물리도록 대령하셨다. 바로 이 시장에서 만원도 안 되는 가격을 주고 말이다. 그런 이력으로는 엄마도 만만찮으셨는데 해마다 소풍 때가 되면 직장생활을 해서 바쁘셨던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정성껏 김밥을 싸 주시기보다 새벽녘에 김밥을 시장 도매상에서 한 박스로 떼 오셔서 온 가족이 3끼를 김밥으로 때우고 먹다가 남으면 이웃에 나눠주기도 하셨다.

퍽이나 편이 적이셨던 우리 부모님. 그것도 모자라 오늘은 손녀까지 대동해 그때의 기분을 만끽하시려는 친정엄마를 보니……. 깨끗이 목욕재계한 돼지머리를 보며 귀엽다고 쓰다듬는 손녀의 예쁜 짓에 할머니는 그런 손녀가 더 귀여워 죽는 눈치다. 잠시 후 빵가게에 들른 친정엄마는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로 “아지매, 빵 얼만데요?” “여덟 개 이천원 예”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며칠 전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엄청나게 오른 한국물가에 몇 년 동안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했는데 동네 제과점 빵 하나가 천원을 넘어가 선뜻 집지 못했는데 무슨 빵 8개에 이천 원 밖에 안한다고?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소보로, 크림빵, 팥빵, 꽈배기 여러 가지를 골고루 섞으며 흐뭇한 표정의 친정엄마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건너편 남작만두에 금세 고개를 돌린 엄마는 “아이고 맞다. 이거 살라고 왔제. 납작 만두는 대구 안 오믄 못 산다 아저씨 이거 하나 주이소” 당면에 부추가 살짝 들어가 20개 피가 켜켜이 붙은 납작 만두. 이걸로 떡볶이를 싸 먹으면 정말 일품인데. 침이 꼴깍 넘어가는 찰라 “천원이요”소리에 나는 대뜸 “천원 밖에 안 해요?? 그럼 다섯 팩 주세요." 했다. “누가 다 먹는다고 그래 마이 사노”엄마의 핀잔에도 햄버거 하나도 5불 넘게 하는데 라며 주렁주렁 까만 봉지를 손가락에 끼운다. 물가 치외법권시장에서 쇼핑을 하는 맛이 제대로다. 기분이 더 업 되면서 “엄마 우리 가다가 닭발 사 먹으까?” 아니나 다를까 실망스런 대답을 한다. “뭐할라꼬 돈을 마이 쓰노 집에 가 밥무믄 되지” “엄마, 내 지금 만원도 안 썼거든. 하여튼 울 엄마 김빠지는 소리 잘해. 손녀보디만 할매 다 됐네”.

2년 전만 해도 호주 살면 한국음식 맛난 거 못 먹는다며 이것저것 사다 먹이시더니 오른 물가에 장사가 없는 건지 자꾸 집 밥만 먹자고 고집하시는 엄마가 돼 버리셨다. 한편으로 딸이 용돈도 못 드리고 친정에 혹까지 데리고 와서 무전취식 하는 게 죄송스럽기도 하다. 오히려 한국 와서 친구 만나러 나가야 되니 애나 봐달라고 부탁하고 이래저래 불효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이런 생각으로 쇼핑의 즐거움을 방해 받을 수는 없지.

“엄마. 저 김밥 보이제. 왜 내 소풍갈 때 맨날 싸 가던 거. 저거는 속에 정구지가 들어가 가지고 김밥이 물어도 끊어지지도 않고 이빨에 끼고 그랬대이. 내 친구들도 내 김밥은 아무도 안 묵더라. 맛살도 없고 햄도 없고 하긴 싸구려 소세지는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빨리 쉬기도 하고.

대답이 없다. 아뿔싸. 도시락 얘기는 안했어야 했다. 맞벌이에 아침잠이 많던 엄마는 어릴 적 도시락 반찬이 항상 대충이었다. 그게 평생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지금에야 서른이 넘어 직장 다니는 막내딸 도시락을 매일 싸면서 사죄하는 중이셨는데 눈치 없는 내가 웃자고 한 이야기에 엄마는 얼굴이 굳으셨다. “그래도 친구들 김밥 집집마다 다 뺏어먹어도 내 김밥은 그대로여서 항상 배불렀는데 머” 뒤늦게 수습을 한다고 하는데 어째 더 슬프다.

그 놈의 김밥은 왜 보여 가지고. 4살 딸아이가 그래도 이 상황을 구원이라도 하려는 듯 “함머니 함머니 내가 드께 ”까만 봉지를 지가 들겠다며 달라는 손녀의 애교에 금세 엄마는 웃는다. 고추튀김 열 개 이천 원. 대형 소세지 삼천 원 치를 더 사고 기분 좋게 돌아서는 발걸음. 코를 자극하는 연탄 석쇠 불고기가 내 발걸음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아부성 멘트 한 마디 던지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래도 고기는 우리 엄마가 젤 잘 재잖아. 고기집도 했었고.

단순한 울 엄마 자랑스럽게 레시피를 읊는다. “고기는 하루이상 재 놓으면 더 맛있다. 키위를 넣으면 살도 연해지고. 파 재래기는 할 줄 아나..”요리 강연에 심취한 모습이 아름다운 울 엄마. 이제야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우리 강아지…….진짜 강아지 보러 가까? 토끼도 있고 닭도 있는 데 가까?” 시장을 떠나기가 싫으신 건지 손녀에게 재미난 구경거리를 더 보여주고 싶은 건지 건너편 동물 골목으로 가자고 하셨지만 마지막으로 싫은 소리를 했다.

“엄마. 가들은 애완용 동물이 아니잖아. 병균도 많을꺼고 애한테 해롭다. 이제 집에 가서 밥묵자아!!

과일을 안 사왔니 장난감 가게에 들를걸. 궁시렁 궁시렁 되며 아쉬워하는 엄마. 그래도 오늘의 삼대 장터 나들이는 추억 만들기로 성공이었다. 재래시장 옆으로 새로 들어선 고층 아파트.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맛나고 저렴한 것들을 거리낌 없이 살 수 있겠지 라는 생각, 시골과 도시의 조화로운 이곳의 문화가 파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들이 머릿속으로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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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수필가: 심원유성자
                         
<>호주한국문학협회부회장

 

코끝에 닿는 바람의 향기가 좋은 여름날이다.

일주일 내내 지루하게 내린 비로 바닥 카펫은 습기가 베여 발을 내딛을 때 마다 텁텁한 느낌이 상그럽더니만, 모처럼 맑고 환한 태양을 보니 오래 헤어졌던 문우를 만난 듯 반가워 기분이 상쾌해진다.

세상만사 찌푸린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다 보면 이렇게 밝고 활기찬 날도 오는 것임을, 한해 한 해가 속절없다가도 이내 잔잔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바라보게 되는 눈을 가진 나이가 되었나보다.

 

살아있다는 건 가슴 벅찬 환희이며 큰 축복이다.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초록색으로 가득 찬 세상에 시선을 멈추며 뭘까 하고 집중해서 보니 어느 곤충학자가 숲이 우거진 한적한 곳에서 애벌레와 나방의 일대기를 담은 필름을 소개하는 중이었다. TV를 보는 내내 감탄과 경이로움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학자는 깊은 산, 우거진 숲을 헤치고 깊숙이 들어가며 주변의 나무들과 나뭇잎들을 세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카메라를 비추는데 콩깍지처럼 보이는 신기한 것을 발견하곤 그곳에다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하고 촬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콩깍지가 흔들흔들 몇 번 흔들리는가 싶더니 아래서부터 쭉 칼로 그려 수술하듯 배가 갈라지더니 연녹색의 애벌레가 출연했다.

누가 부축해 주지도 않는데 어미 몸에서 나올 때 아슬아슬하게 공중에서 분만하지만 뚝, 뚝딱 바닥에 떨어질 것 같은 애벌레는 살며시 풀잎에 실수 없이 안착했다.

어미는 곧바로 몸이 기계로 재듯이 착착 포개지며 아주 작은 껍데기로 변하여 풀잎 뒤로 몸을 감추었다.

애벌레는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한줄기 잎을 갉아먹고 건강한 모습으로 기어 다녔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되었을까?

 

인간은 모태에서 10개월이 지나서야 탯줄을 끊고 태어나 기어 다니다 다시 걸음마를 시작으로 걷고 뛰는 시간이 수년이 걸리는데, 애벌레는 고작 1시간 정도에 어미의 보살핌도 없이 폭풍 성장을 하는 셈이다.

한 사람으로 성장할 때까지 유아에서 어린이로 그 기간 부모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헌신해서 키워내는 데 애벌레 어미는 자기의 분신을 낳자마자 까만 깍지로 변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분골쇄신으로 양육하고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떠나갈 때쯤 부모는 늙어 번식의 의무를 다하고 세상을 뜨는 것 같이 마치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는 것 같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카메라는 얼마 후에 또 한 장면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한 줄기의 푸른 나뭇잎에서 또 하나의 생명체가 나타났다. 한참 동안 검고 갸름한 대롱이 이리저리 출렁이며 움직인다.

한참 후에 배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밑에서 작은 구멍이 보이며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는 물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몸은 점점 더 불러오며 차츰 찬란한 빛을 발하는 나방이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끝까지 달렸다가 사뿐히 밑으로 내려앉았다. 푸드덕푸드덕 2-3회 몸을 흔들더니 나방의 완전한 몸통의 모습이 보인다.

‘와! 어쩌면 저렇게도 고울까’

마치 비단같이 곱고 섬세한 것이 여왕이 가진 실크의 부채와도 같은 아름다운 자태다. 한참을 이리저리 윙윙 나지막한 곳에서 날더니 이번에는 아주 높게 난다. 아름답고 찬란한 색깔을 가진 나방은 꽃밭을 향해 날아간다.

바람에 날리는 꽃들은 살랑살랑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나방의 태어남을 축하라도 하듯이 흔들흔들 손을 내민다. 꽃밭에는 꿀벌도 날아든다. 어제 만난 친구처럼 어느새 하나가 되어 즐겁게 날개 짓을 하며 이곳 저곳 춤을 추며 꽃과 꽃 사이를 날고 있다.

공중으로 한참 날아다니는가 싶더니 어느새 마음에 드는 꽃 위에 앉았다 또 다른 꽃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참으로 창조의 세계는 오묘하다.

한참을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던 나방이 거미줄에 덜컥 걸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곤충이든 뜻하게 않게 일어나는 대형 사고에는 이길 장사가 없는 것처럼 힘없고 가벼운 나방에게도 사고가 생긴 것이다. 

거미줄에 걸려 든 나방은 온갖 힘을 다해 탈출하려고 뒤척여 보지만 움직일수록 더욱 강하게 조이는 거미 줄 덫에 나방의 움직임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힘이 빠지고 지쳐버린 나방은 기진맥진하여 생명의 끈을 포기한 채 움직임을 멈춘다.

우리네 세상이나 곤충의 세상이나 약육강식의 법칙 테두리에 살아가는 한 빠져 나갈 수 없는 덫이 바로 지금의 순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울적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화면을 쳐다보는데, 화면 안에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죽은 뜻 꼼짝하지 않는 나방의 몸을 흠뻑 적시자 거미줄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하며 마치 마녀의 주술이 힘을 잃어 효력이 사라진 것처럼 나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방은 빗물에 젖어 엎치락뒤치락 하더니 거미줄에서 기적처럼 헤어 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나방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젠 죽었구나 하고 체념한 채 그렇게 최후의 순간, 기적 같은 구원의 빛을 받아 결국 자유의 몸이 되어 훨훨 날아 본능적으로 여기저기 꽃밭을 오가며 좀 전의 위기는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되어 버린 듯, 아름다운 자태로 춤을 추는 나방을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인간의 본능인 오욕을 충족하기 위하여 잠시도 쉬지 않고 생존경쟁에서 희로애락으로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방이 비 덕분에 살아날 수 있듯이 절망의 순간이 곧 희망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고통 속에서도 기적 같은 일들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욕망과 욕심, 부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살아있다는 것, 생존 경쟁시대에 기죽지 않고 숨 쉬고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대하고 강한 것인지를 알기에 나방이의 행운이 나, , 우리에게도 생겨날 수 있음이다.

그래서 믿음을 의지해서 맘껏 자기 실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 잘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며 원칙과 기본, 질서를 존중하고 상식이 통하는 선진대국을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애벌레가 안간힘을 쓰고 세상에 나올 때 찬란한 빛을 발하며 탄생하는 신기한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

어디선가 수많은 거미 줄 덫에 걸려든 나방들에게 희망의 빗방울이 그들 위로 내려앉길 희망하며 참 좋은 세상, 잘 왔다가 잘 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도 새벽기도를 위해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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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산/정병만

<>호주한국문학협회 기획이사

 

 

 

 

새벽 별 꼬리 내리면

햇살이 눈을 뜨네

 

영롱한 아침이슬

무지게로 피어나면

노래하는 님의 미소

아침을 깨우고

새들의 노랫소리에

창문을 여네

 

청포도 같은 님의 목소리

그리운 아침

진주이슬 뿌려놓은 초원

따스한 그대 손 잡고

진주이슬 담은 가슴 

행복한 아침을 노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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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산/정병만
<>호주한국문학협회기획이사

 

잊으려 해도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은 그사람

행여 잊어질까

되돌아 생각해봐도

생각은 지워지지 않네

 

바람결에 팔랑이는

떡갈 나뭇잎

그사람 좋아하던 갈잎노래

날 애태우던 휘파람소리

이제는 흘

한 조각 구름처럼

자욱 자욱 저며 드는

이 마음

차라리 슬프다고

슬피 운다고

하얀 미소 깨물며

허공 속 

갈바람에 날리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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