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문육자
<사>한국수필가협회회원
호주에서 갖게 된 제 17회 ‘(사)한국수필가협회 해외 심포지엄 및 낭독의 밤’ 둘 째날 이었다. 전날 한인회관에서 세미나와 심포지엄이 있었지만 (사)호주한국문학협회 회원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러기에 다음날 만났을 때는 처음인 듯 가슴이 설레었다. 공유할 수 있는 언어가 있고 감정이 있으며 당사실처럼 풀어낼 이야기들이 많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남의 장소는 한인(韓人)과 중국인들의 상가가 즐비한 동네 이스트우드에 자리잡은 아리산이라는 음식점이었는데 건너편 학교 마당에는 보랏빛 자카랜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들은 여름을 알리는 이 꽃에서 고향을 느낀다고 했다. 보라색이 주는 몽환 같은 이미지 탓이리라. 어느 것 하나에도 고향과 고국을 결부시키고 싶지 않으랴. <버리고 간들, 쫓겨 간들> 어찌 잊겠는가. 탯줄인데...
낭독의 밤이었지만 귀담아 음미하기보다는 말이 고픈 사람들이라 이야기 나눌 시간을 더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회자는 어색하지 않게 작품 낭독을 적당히 잘라 버리고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을 갖게 했다. 테이블마다 고국의 문인과 현지의 문인들이 섞여 앉은 탓에 이야기꽃은 자연스레 만발하게 되었다.
흥을 돋우는 K수필가의 멋들어진 창(唱)이 와인만큼이나 취하게 만들어 대청마루에서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질곡의 세월이든, 글로벌 시대에 놓여 있는 현재의 상황이든 모국어로 자신의 정서나 사상을 유려(流麗)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모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문학이 그들에겐 더 없는 위로였다.
타향의 하늘, 일터에서 정신 없이 일하다 느끼는 배고픔 같은 갈증. 만삭의 아낙이 쉬이 몸을 풀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처럼 목젖에 걸려 있는 언어들을 뱉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의 여정이 쉽고 평탄한 길이 아니기에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타국이기에, 힘이 되어 줄 단체나 활동무대가 좁은 것이 큰 애로였다.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문학의 길로 들어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역의 땅이라면 호주라는 나라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도 그러했으니... 친구에게 보내려고 써 둔 글을 생각했다.
무던한 삶에 응석 부리듯 / 그대는 떠나갔지
생활의 옹이 어루만지며 / 마음밭에 심어 둔 육사의 청포도 대신
반액대매출의 사과나무를 사다 심으며 /자유를 키우는 친구여
국어 선생보다는/ 슈퍼마켓 여주인이 더 수월해 보이건만
모국어가 저리도록 마려워 / 턱 괴고 앉아 이역 이야기
굽이굽이 말아 보낸 친구여......
친구는 말이 마렵고 고프다고 했다. 그러던 친구는 새록새록 새롭게 다가오는 모국어로 첫 시집을 보내왔다.
호주에 있는 그들도 그랬다. 모국어로 꽃피우는 문학, 문학의 전령사가 되어 우리의 혼을 이국의 땅에 심을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꿈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유년이었다. 아니 고국에서의 눈물이었다. 펼치고 싶은 날갯짓이었다. 그 날갯짓의 시작은 구절양장의 아픔과 시름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문을 열었지만 이젠 그 그리움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절제된 망향의 정을 희망찬 내일의 바탕으로 삼아 모국어를 값진 문학으로 꽃피우고 있었다. 격랑의 세월 속에서도 이어갈 호주에서의 ‘한국문학’을 위해 그들은 한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역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으니 그 삶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들의 방문은 한국수필의 현주소를 알림에도 있었지만 그들이 어려움 속에서 연면(連綿)히 우리문학을 이어가는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손에 들려진 ‘호주한국문학’(통권 4호)에는 그들의 자부심처럼 한국의 얼을 지키는 순수문학지라고 씌어 있었다. 그것은 삶 속에서 캐어낸 보석들이며 그들은 바로 그 정련사(精鍊師)였다. 우리의 문학이 그곳에서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끊을 만큼 소란 떨듯 울어대는 새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라면 쌈질이라도 한다고 느낄 만큼 요란했다. 새의 이름을 물었더니 저녁이면 귀소본능으로 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시끄럽게 재잘대는 ‘진홍잉꼬’란다. 온종일 일어난 일을 그들은 노래로 읊고 있었다. 호주에서의 한국문학이 굳건히 자리 잡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을 노래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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