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 패튼 장군이 종전 후 모두들 승전의 영광을 만끽하는 순간 홀로 마장에서 말을 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글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다. 밤새워 적장 롬멜에 대한 책을 읽으며 전략을 세웠고, 틈틈히 성경을 읽으며 기도했으며, 기총소사하는 적기에  권총으로 맞서는 열정으로 패전하던 전쟁을 역전시킨 패튼 장군이 승전 후 왜 홀로 외롭게 말을 타고 있어야 했을까?

 

군기가 해이되어 독일군 앞에 감히 세우지도 못할 부대를 맡아 군기를 바로 잡고 패전하던 전쟁을 승전으로 바꾼 패튼은 부상병을 위문하던 중, 겁이 나서 전투에 참여할 수 없다고 울면서 입원해 있던 병사를 보고 불같이 화가나서 들고 있던 장갑으로 철모를 한대 때렸다. 이에 대해 장병들과 해당 병사에게 사과하라는 대통령 친서를 받은  패튼의 고독에 대해 얘기했다.

 

그런데 사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나중에 보직 해임을 당한다. 패전을 거듭하던 전쟁을 역전시켜 한번도 패전을 겪지 않은 패튼을 보직 해임한데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있었다. 패튼은 하고 싶은 말을 결코 참지 않는다. 특히 연합군으로 참여한 러시아에 대해 언젠가 싸워야 할 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류의 발언이 여러 곳에서 수차 정치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수차 경고와 참모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패튼이지만 전쟁의 지휘권을 빼앗긴 것은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빼앗긴 것 처럼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목숨보다 더 중하게 알던 자존심도 버린다. 자신의 부지휘관이었던 브레드리 장군의 예하 지휘관으로 다시 참전한 것이다. 앞으로는 말을 조심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렇게 전장으로 돌아온 패튼은 또 다시 승승장구 전투마다 승리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전의 장소로 베사톤을 선택한다. 폭설로 전선이 소강 상태에 있을 때, 패튼은 전세를 판단하며 그 지역이 결전장임을 판단하고 참모들에게 그 지역에 최단시간 내에 진격할 수 있는 작전을 수립하도록 명령한다. 작전을 수립해 놓은 상태에서 연합사령부의 회의 소집 통보를 받는다.

 

바로 그 곳에서 연합군이 독일의 주력부대에 대패를 당하고 수만명이 포위되어 있는데, 참패하지 않으려면 늦지않게 지원군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 가까운 부대에서 가더라도 최소한 2주일이 걸리는 거리였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패튼은 48시간 내에 3개 사단을 투입할 수 있다고 공언한다. 1주일 만에 가더라도 기적이라고 할 판인데 단 48시간내에 진격하겠다니 모두들 현실성이 없다고 웃는다.

 

더욱이나 폭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패튼은 이미 식사 시간이나 취침 시간을 따로 주지 않고 강행군하면 48시간 내에 가능하다는 작전을 세워 놓았으며, 또한 그런 악 조건하에서 강행군을 할 수 있도록 병사들은 훈련이 되어 있었다. 명장은 미리서 가능한 모든 전략을 세워 놓는다. 나폴레옹의 말이다.  

 

폭설이 쌓여 도저히 진격할 수 없는 악조건과 기상 악화로 폭격기의 엄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참모들은 더 이상 진격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그 때 패튼은 군목을 불러 좋은 날씨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한다. “전우를 죽이는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좋은 날씨를 달라는 기도에 응답하실지 의문이라는 군목에게 기도하면 들으실 것이라고 일갈한다.

 

기도문을 받아들고 기도하러 가는 패튼의 모습에서 절대적 신념과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날씨가 쾌청하게 개인다. 패튼은 시간내에 진격하여 독일군을 물리치고 종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독일의 항복이 임박했을 때, 패튼은 또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발언을 했고, 연합군은 러시아 눈치를 보느라 또 패튼을 보직 해임한다.

 

전공이나 승전의 영광에 관심이 없는 패튼에게는 어차피 전쟁이 끝났으니 보직 해임에도 아쉬움은 없을 것이었다. 처세와 처신을 잘하는 사람들이 승전의 영광을 누릴 때, 패튼은 홀로 마장에서 백마를 타고 있다. 패튼같은 영웅이 바닥에 모래가 깔린 실내 마장에서 말을 타고 있다니 약간 아쉽다. 패튼이라면 탱크를 질주하던 들판이나 산야를 달려야 어울릴 텐데 말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생활이 윤택해질수록 사람은 나약해지고 간사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세련된 것인양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그런 기백과 용기를 가진 영웅은 있기 마련이다. 단지 동 시대에 영웅을 알아 보지 못할 뿐이다. 패튼같은 영웅이 그립다.  

저작자 표시

몇주 전 영화에 등장하는 말 얘기를 하며, 세계 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패튼 장군이, 모두들 승전에 따른 영광과 논공행상을 즐기는 순간, 마장에서 홀로 백마를 타고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때 왜 혼자 말을 타고 있었는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한두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글을 보신 몇 분이 전화를 주셨다. 한두마디로 말할 수 없는 그 내용이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신문 칼럼이라 길게 쓸 수는 없고, 영화에서 느낀 포인트만 요약해 보기로 한다. 패튼은 미국 기갑장군으로서 영국 기갑장군 몽고메리와 함께 독일 기갑장군 롬멜을 패퇴시키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만, 일반 기록에서는 몽고메리와 롬멜에 가려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군인으로서 전투와 승전만 생각했을 뿐, 정치적인 처신이나 남의 눈치를 보며 처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2차 세계 대전 당시만 하더라도 탱크가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며 제공권만 장악한다면 탱크는 무적이었다. 독일이 장악한 유럽,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여러 국가를 탈환하는데는 탱크가 진입하느냐 마느냐 하는데 달려 있었다. 독일의 탱크부대가 진주해 있는 곳은 점령 지역이고 연합군의 탱크부대가 진입하면 바로 해방이 되는 전쟁이었다.

미국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영국 장군의 지휘 하에 전투를 하다가 대패하고, 사기와 군기가 해이될데로 해이된 미군을 단련시켜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는 용장과 더불어, 사막의 여우라는 백전백승의 명장인 독일의 롬멜을 상대할 수 있는 지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저돌적이고 임전무퇴의 군인이면서 전략가인 패튼, 오직 전투만을 위해 태어난 장군 패튼을 투입하게 된다.

사막에서 전사한 수 많은 미군 시체들의 옷과 구두 등을 원주민들이 개미떼 처럼 붙어 벗겨 가는 참상을 보며, 죽어서도 발가 벗겨져  독수리의 밥이 되어가는 시체들을 보며 부임한 패튼은, 해이된 군기를 바로 잡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 일환으로 부상병들을 위문하다가, 막 죽어간 병사의 머리 맡에 무릎을 꿇고 눈시울을 붉히는 패튼장군의 표정에서 더 이상 내 병사들을 개죽음 시키지 않겠다는 결의가 보인다.

바로 그 다음 순간, 멀쩡한 병사 하나가 입원해 있는 것을 보고 어디를 다쳤는지 묻는다. 겁에 떨고 있는 병사는 울면서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다고 답한다. 불같이 화를 낸 패튼은 들고 있던 장갑으로 병사의 철모를 내려치며 소리친다. “너 같은 겁쟁이는 우리 부대에 필요없다. 차라리 전선에 나가서 떳떳하게 죽어라!”. 당장 전선으로 보내라는 명령에 군의관이 멈칫거리자 패튼은 권총을 빼들려고 한다.

이 사소한(?)일로, 롬멜을 패퇴시키고 독일의 손아귀에서 아프리카를 해방시킨 패튼에게 시련이 닥친다. 아이크 미 대통령은 이 일을 알고 있는 전 병사들과 병원 관계자 그리고 해당 병사에게 사과하라는 친서를 보낸다. 친서를 앞에 두고 “I feel low”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괴로워하는지 공감이 간다.

패튼의 승전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적장 롬멜에 대한 책을 읽으며 전략을 세웠고, 틈틈히 성경을 읽으며 기도했다. 제공권을 보장 받기 위해 동분서주 했으며 군기를 세우기 위해 스스로 군기에 억매었다. 독일 비행기의 기총 소사에 모두들 길 옆으로 몸을 피하는데 길 한가운데 서서 권총으로 비행기를 조준 사격할 만큼 열정을 바쳐 패전의 전투를 역전시켰다.

그런데 병사의 편지를 받은 어머니가 아이크에게 탄원을 했고, 이것이 전국적으로 비난의 물결로 이어지자, 가뜩이나 종전의 여론이 거센 판국에 민심을 달래기 위해 패튼에게 사과를 하도록 한 것이다. 정치적인 결정이었지만, 패튼에게는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명예와 긍지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패튼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을 것이다.

패튼은 홀로 교회에 나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하나님께 마음의 고통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을 것이다. 철모를 벗어 옆구리에 끼고 부대 장병들이 집합된 연병장에 사과를 하기 위해 혼자 걸어가는 그 모습이 참으로 외롭게 느껴진다.

패튼이 있었기에, 수만의 젊은이들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지 않았다. 겁쟁이 병사 하나의 자존심이 수만명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가끔 이렇게 웃읍게 돌아가는 일이 있다. 그런데 사과로 다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차암. (계속)    

저작자 표시

고국의 총선에서 필리핀계 이주 여성인 이자스민씨가 새누리당의 비례 대표로 당선되었다. 이를 놓고 인터넷 상에서 인종차별적 비난이 도를 넘었다는 뉴스에 매우 우울했다. "불법 체류자가 판치게 생겼다"  "돈에 팔려 온 여자 위해 뼈빠지게세금 거덜난다" 상스러운  비난과 함께 이씨가 '이주민 천국을 약속했다' 날조된 중상모략까지 나 돈다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침묵을 지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995년 무소속으로 캔터베리 시의원에 출마했을 때 받은 상처, 이미 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다시 덧나는 것을 느끼며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우울했다. 그러다가 그러한 인종차별적 비난은 사실상 전체 넷티즌의 1~2%에 불과하다는 뉴스를 보며 마음이 편해졌다.

 

에스엔에스 여론조사 기관인 소셜메트릭스가 분석한 결과, 1~17일 사이 ‘이자스민’이 언급된 트위트의 노출은, 전체 5443704점이었는데 이 중 인종차별적 내용이 담긴 트위트는 13955, 가짜 공약을 확산시킨 트위트는 54032점으로 전체의 1.2% 수준이다. 허위 학력 논란 트위트 43680점을 합할 경우 2%. 그러면 그렇지 우리의 민도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 아니던가.

 

필자가 1995년 무소속으로 캔터베리 시의원에 출마했을 때, 전혀 예상 못했던 첫번째 장벽은 인종차별적 폭력(언어 및 언동)이나 배척 내지는 혐오감 표출이었다. 이미 백호주의가 사라지고 일상생활에서 인종차별적 대우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경악스러웠다. 스스로가 열등해 보였고 초라해지기까지 했다. 평생 겪어 보지 못한 수모나 모멸감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선거 포스타는 붙이는대로 페인트로 범벅이 되거나 칼로 도려졌으며, 더러운 문구가 쓰여 있었다. 집이나 사무실로 밤중이고 새벽이고 전화가 걸려와 사라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썸뜩한 협박을 해왔다. 역이나 기타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홍보 자료을 돌리거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으면 백인이 나타나 야지를 놓거나 비난을 하면서 웃음 거리를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니 밤낮 없이 참으로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퀸슬랜드의 시골에서 피쉬앤칩스 가게를 하던 폴린 헨슨이라는 무식한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했으니) 여자가 정치권에서 금기시 되었던 반아시안 반이민 정책을 들고 나와 전 호주에 돌풍을 일으켰다. 학교에서 동양계 여자 애에게 침을 뱉는 백인계 남자애가 다시 등장하고 수터마켙에서 동양계 주부의 트롤리를 밀어 부친 사건이 발생했다. 센트럴역 육교에 아시안 고우홈이라는 낙서를 그 때 필자는 직접 보았다.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인종차별이 얼마나 뿌리깊게 내재되어 있는지 그제서야 깨달으며, 3년전 선거시 왜 그렇게도 극성스럽게 인종차별적 폭력(?)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폴린 헨슨의 인종차별적 완네이션당이 창당되었고 그에 대항하기 위한 유니티당이 창당되었다. 필자는 바로 그 유니티당에 입당하여 1999년 당선되었는데, 당시 완네이션당에서도 후보를 냈었고, 아주 치열하고 치사하게 대립했었다.

 

 

 

백인은 그렇다치고 한인 사회의 소위 지도급 인사들이 사퇴하라고 난리를 쳤다. “너 때문에 괘씸죄로 찍혀 우리 한국계 다 죽는다는 것이었다. 불과 십수년 전 일이다. 이제 시의원뿐 아니라 주의원 연방의원도 출마한다. 그래도 누구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십수년간 얼마나 달라졌는지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이자스민씨에 대해 찾아 보았다. 14 한국으로 시집와 아이를 낳은 남편과 사별하고도 이주 여성을 돕는 모임의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모범적 시민이라고 한다. 필리핀에서 명문대 의대를 나왔다고 여기 저기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생물학과에 다니다가 한국인 이씨를 만나 중퇴하고 결혼했다. 왜 그렇게 와전되었는지, 또 와전된 학력이 그의 현재를 만드는데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느 티브이에 출연하여 의대에 다녔다고 직접 발언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필리핀에서는 기초 학문 분야인 생물학과 4년을 거친 후 다시 4년간 의사과정을 밟아야 한다. 즉 의대를 가기 위해 생물학과를 다니다 중퇴했을 수는 있지만 실제 의대를 다닌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런 발언을 했다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새누리당 당선자 김형태의 제수 성추행이나  문대성의 논문 표절과 같은 차원의 품성 문제이지 인종차별 문제는 아니다. 인종차별도 안되지만, 이주민이기 때문에 학력 위조(?)도 눈감아 준다면 이것은 역차별이다. 제수를 강간하려는 패륜아나 남의 글을 베껴 박사 학위를 받은 자에 이어, 학력 위조의 이주 여성까지 국회의원이 된다니 참 허탈하다.

 

저작자 표시

한참은 흘러간 영화를 사 보는데 재미를 붙인 적이 있다. 디비디 판매점에 들어가서 옛 영화를 뒤적이다가 보고 싶은 옛 영화를 발견하는 맛은 고물상에서 골동품을 발견한 것 만큼 흥분이 된다. 꼭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 혜매다가 못찾고 결국 인터넷에서 구입하기도 했다. 옛날 명화는 보고 또 보아도 재미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영화에 등장하는 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는 거의 없다.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단연 말일 것이다. 서부 영화야 총잡이와 말이 없으면 되지 않는 영화이고, 고전 영화의 전쟁이나 의전에는 꼭 말이 등장한다. 또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의 대부분을 분담하는 동물로서 등장하지 않으면 사람의 삶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 말이다.

 

한참은 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보이는대로 샀다. 미스티, 블랙비유티, 드리머, 플리카 등 주로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말과 사람이 교감하는 감동의 드라마로 그려진다. 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기병대(Light Horsemen) 2차 대전 때 실제로 기관총과 포가 난무하는 전장을 누비는 호주군과 말의 용맹을 나타내는 영화이다.

덧붙여, 영화처럼 좋은 승마 교본도 없다. 말을 타는 자세나 속도, 마구 등도 나라와 시대에 따라 제각각이고, 말의 습성이나 말을 다루는 방법 등 도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영화의 줄거리나 주인공 보다는 말이 더 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말은 뭐니뭐니 해도 서부 영화에 나오는 말, 그 중에서도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말이 권위가 있다. 휘파람 소리나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멀리서 주인공을 태운 말이 나타난다. 정의의 총잡이는 말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고 다시 석양 너머로 사라진다. 가끔은 주인공이 죽고 그 관을 보며 말이 외롭게 서 있기도 한다. 

서부 영화 외에 가장 짜릿한 승마 장면은 자이안트라는 영화의 도입부가 아닐까. 록 허드슨이 종마를 사러 기차를 타고 오는데, 기차 창 밖에 그 종마를 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20여마리와 함께 달린다. 언덕을 넘고 울타리를 넘으며 역에 도착할 때 까지 기차 옆에서 달리는데 숨이 막힐만큼 멋있다. 둘은 결혼하여 그 종마와 함께 텍사스로 돌아오는데 그 종마를 타다가 누나는 목을 다쳐 죽고 말은 사살된다.

챔프라는 영화가 있다. 이혼한 전직 프로 권투 참피온이 아들에게 사준 경주마를 도박으로 잃고, 말을 지키려다 사채업자를 폭행하고 감옥에 가게 되자 할 수 없이 전처에게 아들을 보낸다. 갑부인 전처로 부터 아들을 되찾아 오기 위해, 무리하게 다시 링에 올라야 했던 주인공은, 참피온이 되지만 그 자리에서 죽는다. 감동을 주는 부자간의 정이 말과 함께 전편에 흐른다.

벤허라는 영화는 어떤가. 영화의 주제나 규모가 크지만 그 중에서도 마차 경기가 압권이다. 4마리의 말이 횡으로 연결되어 끄는 마차가 8대 등장하여 경주를 하는데 주인공인 벤허와, 친구였다가 원수가 된 메쌀라의 대결로 압축되고, 결국 메쌀라가 경기에서 죽으면서 복수는 끝이 난다. 마차 경기의 그 웅장한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런데, 전혀 말과는 상관없는 영화에 말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최초의 뮤지칼 영화 남태평양이 그것이다. 세계 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주둔해 있던 미 해군 부대가 배경이다. 섬에 살던 프랑스계 백인과 간호장교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백인이 백마를 타고, 하필이면 간호장교가 머리를 감고 있는데 나타난다. 발리하이 섬을 배경으로한 몽환적인 영화이다.

그러나 가장 멋잇고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바로 패튼이라는 영화의 승마가 아닌가 한다. 패튼은 미국 기갑 장군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프리카에서 독일의 기갑 장군인 롬멜을 패퇴시키고 최초로 미군과 영군이 합류하게 했을 뿐 아니라, 영국의 기갑장군인 몽고메리와 공을 다투며 언제나 먼저 승리를 차지한 장군이다.

결정적인 전장 베사토그네에 3개 사단을 48시간 내에 진주시켜 세계 대전을 종결한 불세출의 영웅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승전하고, 몽고메리가 전공을 보상받는 순간에 패튼은 혼자 마장에서 백마를 타고 있다. 왜 혼자 말을 타고 있어야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한두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영웅의 외로움에 동참하고 있는 그 말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영웅의 외로움이 너무 절실해서 말도 달라 보이는가?

 

저작자 표시

연방정부의 줄리아 길라드 현수상과 케빈러드 전수상간의 파워게임이 일단락되자 배리 오패럴 NSW 주수상과 클로버 무어 시드니 시장의 게임(?)이 엎치락 뒷치락 달아 오르더니 지난 수요일밤 드디어 막을 내렸다. 주의원과 시의원(시장)의 겸직을 금지한다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것이다. 이제 무어 시드니 시장은 금년 9, 시드니 시장 출마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NSW 주의원을 사임하든지 양자택일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무어시장이 누구인가? 무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1988년부터 NSW주의원에 당선되어 24년째 재직중이며, 2004년부터는 시드니 시장에 당선되어 겸직하면서, NSW 정책이나 행정에 자주 제동을 걸었다. 시드니 시장은 파워면에서 서울 특별시장이 울고 갈만큼 대단하다. 호주에서는 메이어라고 다 같은 메이어가 아니다. 명칭도 다르다.

시드니나 파라마타 처럼 큰 도시의 시장은 로드 메이어라고 한다. 캔버베리 처럼 시민들의 투표로 선출하는 시장은 포풀러 메이어라고 한다. 시의원만 선출하면, 시의원 중에서 호선으로 시장을 뽑는 작은 시는 그냥 메이어이다. 또 같은 메이어라도 캔터베리같은 시티의 메이어가 있고 스트라같은 뮤니시팰리티의 메이어가 있다. 행정 단위가 다르다. 따라서 메이어를 정확히 번역하자면 시장 또는 읍장으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연방) 의원에 재직 중이면서 시의원(시장) 출마하는 경우는 무어시장이 유일하다. 대부분 시장(시의원)으로 재직 주의원에 선출되면 출마 당시의 직책인 시장(시의원)직을 사임하므로서 겸직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장(시의원)직을 사임할 , 잔여 임기가 1 이상일 경우 보궐 선거를 해야 하며 보궐선거를 피하기 위해 1 미만이 때까지 겸직을 하는 경우는 있었다.

작년 3 총선 이후 자유당 연립 정부가 탄생하면서, 주의원에 당선되어 시장(시의원)직을 사임할 경우 잔여 기간에 상관 없이 보궐 선거를 치르지 않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여 이제 의원에 당선되면 잔여 임기에 상관없이 사임하여도 보궐선거를 치르지않게 되었다. 뒤집어 말하면, 주의원에 당선된 후에도 시장(시의원) 겸직하면서 보궐 선거를 피하기 위해 그런다는 핑게도 이제 대지 못하게 되었다.

주의원(연방의원) 당선된 다음 시의원(시장직) 사임하지 않은 경우도 별로 없을 뿐더러, 일부 겸직해도 기간이 길지 않아 법제화할 만큼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보궐선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을 만든 , 아예 겸직 금지법까지 상정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클로버 무어 시드니 시장이 타켓이라고 본다. 물론 오패럴 수상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패럴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주정책에 자주 제동을 걸어 무어시장을 향해 칼을 들었다고 있다. 가능성도 농후하다. 하원의 과반수를 장악했으니 상원만 통과되면 겸직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 것이고, 그러면 오는9월의 지방 선거를 앞두고 무어시장은 주의원직을 사임하지 않을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주의원하자고 시드니시장을 포기하면 금상첨화이다.

상원의원 사격당의 2명은 작년 총선 시부터 자유당의 프리퍼런스 지원을 받으면서 상호 혐조가 되고 있다고 필자는 본다. 또한 상원 2석을 차지한 기민당도 자유당 정권과 협조적이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오패럴 수상은 겸직금지라는 법안을 상정하는 칼을 빼들었다.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칼을 빼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가다 마지막 순간에 믿었던 기민당이 딴지를 걸고 나왔다. 겸직 금지 대상에 주의원만 넣을 것이 아니라 NSW주내의 연방의원까지도 넣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법안에 동의를 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왜 갑자기 그런 딴지를 걸고 나왔던 것일까?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민당 소속의 폴 그린 의원은 현재 겸직하고 있는 숄해븐 시장에 재도전하기 위해서는 의원직을 사임해야 한다. 노우라 인근의 조그마한 시골의 시장하겠다고 주 의원을 사임할 리는 없으니, 시장 출마를 포기할 것이다. 문제는 자유당 소속의 조나단 가쉬 연방 상원 의원이 내년 초에 상원의원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금년 9월의 선거에서 바로 그 숄해븐의 시장직을 노린다는 것이다.

기민당의 요구대로 연방의원을 포함한다면 그에 영향을 받는 연방의원은 딱 한 사람 바로 그 가쉬의원 뿐이다. 상원통과를 위해 기민당의 도움이 필요한 오패럴 수상으로서는 가쉬의원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런데 법안은 수정없이 상원을 통과했다.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정치란 막후에서 여러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의 운명이 갈렸다. 정치란 이런 것이다.

저작자 표시

잘 아는 후배의 동생이 찾아 왔다. 억울한 일을 당해 심신이 피로하고, 여러가지 길을 찾았으나 비용만 나가고 수년째 해결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필자의 꿈을 꾸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정의감이나 의협심이 강한 필자가 이제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서 힘(?)도 생겼을테니 억울한 일을 해결해서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취지였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화가났다. 자유당 정부가 들어섰다고 필자에게 힘이 있을 리도 없고, 또 호주가 힘으로 뭔가 해결될 나라도 아니니 당장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해결해 주고 싶다. 그 형이 필자 보기에 진실된 사람이어서 좋아했던터라, 남의 일에 나서지 말자고 골백번도 더 다짐했는데 또 나서게 될 것 같다.

1999년에 신문을 발행하고 나서 곧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시의원에 신문까지 하다보니 큰 힘이나 있는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억울한 일, 한 맺힌 일, 기타 등등, 그런데 필자의 성격이 또한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못된 놈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래서 여러가지 오지랖 넘게 앞장 서 왔다. 그냥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앞서서 나갈 적이 더 많았다.

시의원되고 신문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불특정 다수가 찾아오지 않았다 뿐이지, 주변에서 일어난 일 가로채서 앞장서기 다반사였다. 지나가다 남의 싸움 보고 말리다가 자기 싸움 만드는 그런 짓(?) 때문에 집(?)에서 여러번 혼(?)도 났다. 의협심이니 정의감이니 하며 찾아 왔다가도, 일이 해결된 후 혹은 해결되는 과정에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열에 여덟은 발을 빼기 때문이다.

의협심을 찾지 말든지 아니면 최소한의 신의는 지키든지 해야 할텐데, 사람이란 간사한 물건이라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 필자 또한 그런 꼴 볼 때마다 이제는 정말 남의 일에 나서지 말자 다짐하지만 골백번을 다짐해도 돌아서면 또 사람을 믿게 되고, 악한 놈 미워하게 되고, 그래서 또 앞장서게 된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누가 보아도 불의라고 생각해서 동조하다 보니 또 앞장서게 되었는데, 당사자가 발을 빼니 결국 필자의 싸움이 되고 말았다. 그런 일을 당하는게 뭐 한두번이던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군 하고 만다. 아쉬운 소리나 하고 신의를 버리는 그런 자리에 있지 않고, 배신을 당하고도 또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감사한 일 아닌가.

남의 일에 앞장 서는 것, 요거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딩 때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말 별명의 뜻을 번역하다보니 제맛은 안나지만 각설하고, 2때 거의 매일 싸우고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맞장 떠 패 주고 학교 밖에서는 도망다녔다. 왜냐하면 필자와 싸운 애들은 주로 학교 밖 써클에 가입한 애들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고국에서는 일진이라는 학교 주변 폭력 조직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당시에도 써클이라 부르던 조직이 있었다. 그래서 힘없는 애들을 괴롭혔다. 자랑같지만 그런 써클 애들이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애들을 괴롭히는 것을 말리면서 써클 애들의 도전을 계속 받았던 것이다.

그 때만 해도 학교는 권위가 있었고 교권은 살아있어서 써클 애들도 학교 안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고 퇴학생이나 졸업한 써클 애들은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맞짱을 뜨고, 밖에 나가면 써클 애들의 보복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다. 그러면 필자의 비호를 받은 애들이 교대로 필자가 두고 간 가방을 집으로 배달했었다.

요즘이야 시절이 고약해서 소위 학생이라는 아이들이 피해 학생의 집에까지 드나들고 피해 학생의 어머니까지 폭행하는가 하면 교사까지 폭행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한 두 학생의 의협심이나 정의감으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그 때는 그게 통하던 시절이었다. 또 의리가 있어서 한번 시작하면 죽든 살든 같이 간다는 신의가 있었다.

요즘이야 어디 의리가 밥 먹여 주던가. 급할 때는 정의감이니 의협심이니 찾다가 세불리 하거나 급한 불이 꺼지면 큼 큼 헛기침하며 먼산 보는 인간들 한둘이던가.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 사는 곳에 사람다운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 만나는 맛에 여전히 앞장도 서고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큼 큼

저작자 표시

요즘 고국의 정치를 보면 개그를 보는 것 같다. 27살짜리 청년을 비대위에 임명해 개그를 하더니 이제 문재인 대선 주자 대항마로 27살 처녀를 후보로 내세워 지지율을 따라 잡느니 바람을 일으키느니 개그를 하고 있다. 거물을 욕보이는 가장 쉬운 길은 가장 형편없는 선수를 내세워 상대하게 하는 것이다. 힘껏 용을 쓰자니 상대가 우습고 그냥 두자니 깐죽거리고, 그러다 아차 실수하는 날에는 그런 망신이 없다.

 

이거 참 묘수 같다. 어차피 질 바에야 져도 그만인 선수를 내세워 상대방 거물의 김빼기에 더하여 약올리기를 할 수 있다. 소발로 쥐잡는 격으로 요행이 이기면 그야말로 횡재하는 것이고 져도 손해볼 것 하나 없는 기가 막힌 묘수이다. 한가지만 감수하면, 즉 누가 보아도 떳떳하지 못하고 졸렬한 꼼수라는 수치심만 감수하면 된다. 새누리당 관계자들도 이기기 위한 정당한 대결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가 고딩때 유도 선수였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그 때는 단체 경기를 하면 7명이 한팀이었다. 제일 강한 선수부터 차례로 나오게 하면 강한 선수끼리 붙어서 떳떳하게 승패가 갈릴텐데, 그런 규정이 없으니까, 눈치를 보아가며 상대팀 강한 선수에 우리팀 약한 선수가 붙도록 해서, 누가 붙어도 어차피 질 한판을 처리한다. 그래서 전력이 약한 팀도 대진만 잘하면 강한 팀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작전에 말려들어 약팀에 진 강팀은 억울하고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재인 대항마로 27살자리 처녀 후보를 내세운 것은 전략도 작전도 아니다. 마치 도전 골든벨에 나온 고딩이 모자에 친구들 명찰을 붙인 것처럼, 온몸에 다닥다닥 리본 같은 것을 붙이고 마치 고교 학생회장 선거같은 캠페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치기다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옛날에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어느 대학 축제에서 보디빌딩을 하는 남학생이 단상에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단다. 여러 대학교 학생들이 모여 즐기는 축제에서 여학생들이 모여들고 환호가 터지고 덩달아 그 남학생의 대학 이름이 연호되고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그 대학과 경쟁되는 학교의 남학생이 웃통을 벗고 단상에 올라 섰단다.

 

그것도 모르고 한참 용을 쓰며 근육을 쿰틀거리는데 갑자기 웃음이 폭발한다. 웬일인가 하고 보니 관중들의 눈이 옆으로 돌아가 있다. 옆을 보니 아주 마르고 앙상한 남학생이 자기가 하는대로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의 열연이 순식간에 코미디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근육을 비틀어 보여도 이미 관중들은 옆 학생의 앙상한 뼈의 흐느적거림을 보며 폭소만 터트린다. 얼마나 황당하고 화가 났겠는가.

 

지금 새누리당이 내세운 후보는 보디빌더 옆에서 흉내를 내며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빼빼마른 남학생과 같다. 대선주자가 나와 총선을 치르고 있어서 전국의 눈이 집중되는 중량급 선거구가 순식간에 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의 수준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도대체 선거를 하자는 것인지 약올리기 놀이를 하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새누리당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치기가 들어나는 일이다.

 

근육을 자랑하던 보디 빌더가 참다 못해 그 학생을 들어 올려 어린애 가지고 놀듯 빙빙돌리다가 단상 아래로 던져 버렸다던가 어쨌다던가 하며 얘기는 끝이 난다. 물론 앙상한 친구는 겁에 질려 떨다가 단상 아래로 처박히는 추태를 부리며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27살짜리 처녀 후보를 직접 상대한다면 들어올려 매다 치고 말겠는데 이것은 직접 부딪치는 게임이 아니라 더 난감하다.

 

프로 레슬링을 흔히 쇼라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그런 거구들이 실제 그렇게 치고 박으면 게임이 끝나기 전에 누구 하나는 죽어 나갈텐데 아무도 치명상을 입은 선수는 없다. 레슬링에서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거구가 악역을 맡아 계속 반칙을 저지르다가, 체구는 반밖에 안되지만 반칙을 않던 선수에게 져서 바닥을 치는 순간이다.

 

쇼가 아니라면, 직접 겨루는 경기에서 거구의 대항마로 그런 경량급을 내세우면 한주먹에 나가 떨어지고 말텐데, 선거라는 것이 레슬링이나 권투처럼 직접 겨루는 경기가 아니다 보니, 깐죽거리며 지지율을 따라 잡느니, 바위를 계란으로 치니 해도, 참고 같이 놀(?) 수 밖에 없다. 참으로 황당하고 기분 나쁜 게임이다. 이런 게임은 보는 것만도 불쾌하고 찝찝하다.

 


저작자 표시

봅카 전 NSW주 수상이 연방 정부의 외무장관에 발탁된 것은 필자에게 충격이다. 현직 국회의원이 아닌 외부 영입은 호주 역사상 최초의 파격적인 인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카 전수상을 존경했던 필자로서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측근의 반발, 특히 외무장관에 내정되었던 측근의 반발로 취소했다가 다시 강행해야 할만한 이유가 무엇일까? NSW주 수상이라는 경력과 연방정부의 외무부 업무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 말이다.

 

카 전수상이 누구인가? 그 역시 내부 반발로 물러났던 분이다. 3선 수상으로서 4선 까지도 전혀 의심의 나위가 없을만큼 절대적인 지지와 지도력을 인정 받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내부 반발로 물러났다. 그러한 카 전수상을 영입함으로서 길라드 수상이 노린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이벤트성(?) 영입에 대해 당사자(?)의 입장일 수 있는 러드 전임 장관은 엑셀런트 초이스라는 단어로 받았다. 어떤 의미인지 알듯 말듯 아리송하다.

 

주 수상이 연방 정부의 장관으로 가는 것이 영전이라고 하는 분도 있고 격에 안 맞는다는 분도 있는 것 같다. 전자는 한국식으로 생각해서 도지사 급이 중앙 정부의 장관으로 갔으니 영전이 아니냐는 것이다. 후자는 호주의 체계를 아는 분으로서, 주 정부가 연방 정부의 하급기관이 아닌데 주 수상이 어찌 연방 정부의 장관으로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두가지 다 호주에서는 맞지 않는 발상이다. 러드 전 연방 수상이 자기가 키운 정치 후계자 길라드 현수상에게 내부 반발로 수상직을 물러준 뒤 그 밑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것을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다. 물론 러드 수상의 굴신이 흔쾌한 일이나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전 주수상의 연방 외무 발탁이 격에 맞느냐 아니냐 하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또 한가지, 호주의 연방수상이나 주수상은 국민들의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다. 국회내에서 지역구 의원 과반수를 확보한 당의 총재가 수상이 된다. 수상을 총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곧 선임 의원 혹은 수석 의원 정도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명칭뿐 아니라 실재 권한도 그렇고 의원들과의 관계도 격이 다른 상하 관계는 아니다.

 

선거시, 당의 총재가 선봉장이 되기 때문에 후보를 선택하면서 그 당이 다수당이 되면 누가 수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적인 후보 선택의 요소가 아니므로 선거의 승리에 대한 공을 전적으로 총재가 가질 수는 없다. 어쨌든 당내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못하면 언제나 총재직 곧 수상직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연방 선거에서 보았듯이, 자유당 연립이나 노동당 모두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자, 무소속과 그린 소속 의원 4명의 지지를 얻고자 양대 정당이 얼마나 치열한 혈투를 벌였던가. 또 그들의 지지로 노동당이 집권했지만 지금이라도 무소속 의원 1-2명이 반기를 들면 정권이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표대결 후에도 러드측 모 장관이 의원직을 사임하려 하자, 보궐 선거를 치러서 잘못되면 정권이 바뀌는 사태가 올까 봐, 당에서 극구 만류하여 사임을 번복하기도 했다. 수상이나 국회의원이 동등한 동료의 입장이며, 다만 선후임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그러니 격에 맞고 안맞고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흥미거리는, 당내 반발로 수상직을 잃은 카 전수상을, 그런 반발로 인해 수상직을 차지한 길라드 수상이 발탁한 상황이 묘하다는 것이다. 그런 반발로 수상직을 잃은 러드 수상의 리턴 매치 도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직후 개각에서 그 후임으로 발탁한 것이니 더욱 그렇다.

 

그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기자들이 카 전수상에게 차후 수상직에 도전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찌보면 민감하고 야유성있는 질문에 카 전수상은 단호히 하며 길라드 수상을 무한히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내에서 더 이상 동료의 등을 찌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충성 다짐인지, 아니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이 또한 아리송하다.

 

“7년 동안 묻혀있는데 길라드 수상의 목소리가 깨웠다는 카 전수상의 말을 들으며, 어떤 마음인지 짐작이 간다. 그렇더라도 취임 첫날 야당 총재를 구두쇠 최면술사라고 공격하는 것은 의외이다. 저격수 역을 맡은 것인가? 카전수상을 존경하는 입장에서 격에 맞지않게 과잉 충성하는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글쎄  

저작자 표시

오랫 만에 필자를 만나거나 통화를 하게 되면 열에 다섯 분은 요즘도 말 타시죠?” 혹은 요즘도 말 타세요?” 하는 인사를 받게 된다. “타시죠?”하는 분은 필자를 좀 더 잘 아는 분으로서 계속 타는 것을 아는 분이고, “타세요?” 하는 분은 말탄다는 것은 들었는데 요즘도 타는지 확신이 없는 분인 것 같다.  

 

필자를 아는 분 중 반 정도는 말타는 것으로 필자를 기억하시는 것 같다. 필자가 하는 일 혹은 했던 일이 많은데, 그래서 말타는 것은 취미 혹은 스포츠에 불과한데, 왜 많은 분들은 필자에게 말 얘기 부터 하는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이 기회에 답을 하자면 요즘도 계속해서 말을 타고 있다. 6년이 넘었는데 어지간하면 싫증이 날만도 한데 살아있는 말을 타는 것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싫증은 커녕 갈증이 날 정도이다. 물론 날씨가 무덥거나 비가 많이 올 때, 또는 피곤할 때나 바쁠 때 썩 내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빼먹은 적은 없다.

 

말도 계속 운동을 시켜야 한다. 한동안 안타면 사람 태우기를 싫어하게 된다. 심하면 다시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이 이상가는 운동이 없다. 피곤할 때나 신경을 많이 쓸 때도 일단 말을 타고 한바탕 달리고 나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렇게 가볍고 상쾌해지는 것이 꼭 거짓말처럼 달라진다. 그맛을 알기 때문에 빠지지 않게 된다.   

 

요즘은 좀 색다른 맛에 빠져 있다. 이른 새벽에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온 동네를 울리는 그것이 의외로 짜릿하고 상쾌하다. 요 근래 비가 너무 길게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길옆의 풀이 자라서 바닥이  안 보이고, 또 땅이 젖어 미끄럽거나 말 발이 폭 폭 빠져서 위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아스팔트 위를 달리게 되면서 알게 된 묘미이다.

 

말은 보통 편자를 박는다. 발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취미로 타는 말은 사실상 필요 없다. 자갈 밭이나 포장된 도로 혹은 거친 바닥에서 힘든 일을 할 때 필요한 것이지, 취미로 달리는 경우 대개 잔디 위나 어쩌다 흙이 있는 산 길을 달리는데 무슨 편자가 필요하겠는가? 호주 사람들 대부분 편자를 박거나 발굽 정리를 해 주는데, 필자는 가끔 발굽 정리(발톱 깍기)만 해줄 뿐 편자는 박지 않는다.

 

대신 풀밭이나 흙 위가 아니면 달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포장된 길을 가야할 때는 평보나 속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포장된 도로나 거친 곳을 달리게 되면 발굽도 상하게 되지만 더 큰 문제는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간다. 특히 앞다리 무릎에 이상이 생길 우려가 있다.  

 

그런데 요즘 너무 비가 길게 온다. 평보나 속보도 하루 이틀이지, 말 위에서 몸이 비비 뒤틀릴 판이어서 아스팔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에 산 암말은 쿼터호스라는 호주 종자인데 달리는 폼이 가볍고 경쾌하다. 달릴 때도 바닥을 가볍게 치며 튀어 오르는 맛이 나기 때문에 무리가 적을 것 같아 시도해 보았다.

 

몇번 타보니 그런대로 괜찮아서 4년 전에 산 숫말도 아스팔트 위에서 몇번 달려 보았다. 숫말은 호주 종자인 스탠다드 브리드인데 달리는 폼이 무겁고 거칠다. 달릴 때도 땅을 울리며 달린다. 암말이 손바닥으로 나무판자를 치는 맛이라면 이놈은 주먹으로 땅을 내려치는 맛이다. 조금 무겁지만 그런대로 괜찮아서 요즘은 이놈도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위험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문제는 새벽에 탈 때이다. 요즘 아침 여섯시 좀 지나면 어스름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을 잡아 안장을 얹고나면 6시 반쯤 된다. 아직 잠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요란하게 말발굽 소리를 내면 욕 먹을까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암말은 새벽에, 숫말은 저녁에만 타고 있다.

 

아무리 경쾌하게 달리는 놈이라도 새벽에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소리는 온 동네에 울린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쾌감이 있다. 시골 길이라 그런지 메아리가 길게 끌리고 소리가 경쾌하게 멀리까지 울리는데 너무 너무 좋다. 달리는 맛에다 소리까지 가미하니 이것 참 오지다. 다음달 쯤에는 새벽에 숫놈을 타 볼 생각이다. 얼마나 요란할지 지금부터 발끝이 간질거린다.  


저작자 표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하 박위원장)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슈화되고 있는 정수장학회의 강제 헌납에 대해 계속 발뺌을 하자 문재인 대권 주자가 트위터에서 장물은 맡겨 놓아도 장물이라고 한마디 했단다. 아주 명쾌한 일침이다. 젊잖게 표현하니 강제 헌납이지 과거사 청산위에서는 강탈이라는 표현을 썼다. 총을 들고 협박해서 기부 각서를 받았는데 그게 강탈이지 뭔가?

 

강탈한 것을 우리는 장물이라고 한다.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부산 MBC 그리고 당시 부일장학회는 바로 이런  장물이다. 특히 부일장학회는 박정희의 정자와 육영수의 수자를 합해 정수장학회라고 개명까지 했다. 훔친 차에 가짜 차대 번호를 붙이는 것 같은 뻔뻔한 짓을 했다. 그것을 차고 앉아 경영하다가 현 경영진에게 물려 주고 손을 뗐다. 누가 보아도 대리 경영을 하고 있는데 혼자서만 아니란다.

 

지난 24일 부산을 찾은 박위원장은 “아무 관계도 없는 저한테 자꾸 누구를 사퇴시키라고 하는 건 얘기가 안 된다. 부산일보 노조에서 원하는 것은 결국 재단 이사회에서 경영권까지 다 내놓으라는 것인데 이는 장학회의 주인인 이사진과 대화해야 하는 것이지 나하고 할 얘긴 아니다. 하자가 있으면 법적으로 해결해야지 정치적으로 얘기를 만들어 풀려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암 법 좋아 하신다. 그것을 빼앗을 때는 법대로 했던가? 당시 소유주 김지태씨를 부정 축제자로 몰아 구속한 상태에서 권총을 차고 들어가 부정 축재로 모은 재산은 다 우리(국민의) 것이다라고 협박하며 기부각서를 쓰게 한 것이 합법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억지 소리를 듣고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꿀 먹은 벙어리이다. 설마 모두들 법대로 된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거기에서 나오는 이권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그 경영권 때문에 박위원장은 여동생 박근영씨와 불화가 극심하며, 남동생인 박지만씨와 박근영씨 남편 모씨와는 청부 살인을 시도했다고 고소하고 명예훼손이라고 맞고소하는 등 조폭들이 울고 갈만한 법적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권도 없는데 서로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그런 추태를 부릴 것 같지는 않은데 글쎄올시다.

 

법정도 마찬가지이다.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가 된지 오래된 얘기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서울 중앙 지법 민사17(부장판사 염원섭) 24일 김지태씨의 장남 김영구씨(74) 등 유족 6명이 “강제 헌납 받은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의 주식을 반환하거나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며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렇게 판결했단다.

 

“과거 군사정부에 의해 자행된 강압적인 위법행위로 주식이 증여됐으므로 국가는 김지태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재산을 돌려달라고 하거나 국가에 책임을 묻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유는 김지태가 증여행위를 아예 무효로 할 정도로 의사결정의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면서 “강박에 따른 증여 의사표시에 대한 취소권은 주식을 증여한 1962 620일로부터 10년이 지나 소멸됐다”고 말했다.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김씨가 석방된 1962 622일로부터 10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기각했다. 즉 의사결정을 전혀 할 수 없다고 인정되면, 시효와 상관없이 증여가 없던 일이 되지만 강압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구속된 상태에서 권총을 차고 들어와 협박을 하면서 각서를 쓰라는데 쓰지 않을 장사가 있을까? 그 때가 어느 때인가? 군사 쿠테타가 성공하여 서슬 퍼런 군인들의 세상이었다. 말 한마디로 파리 목숨 처럼 사람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가던 때가 아닌가?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의사 결정을 전혀 할 수 없다고 인정이 될까? 염원섭판사라면 그런 상황에서 버틸 수 있었을까?

 

다이아 반지 이론(?)이 나왔다. 민주통합당의 신경민 대변인은 26일 논평에서 "조폭이 다이아 반지를 강탈하고 대를 이은 지 50년이 지났다고 해서 '법대로 처리하자'고 말할 수 있느냐. 손가락에 끼고 다니다 탈이 나자 비서 손가락에 끼워주고 '나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말을 들으며 정치적인 공세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공감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필자 만일까?

 

독재자의 딸로서 독재의 장물을 공유하다가 측근에게 맡겨 놓고 손을 털며, 법대로를 외치는 대권 주자에 열광하는 국민들을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의와 법보다 편견과 사감이 앞서는 국민들이 있는 한 우리의 역사는 항상 그 자리에 맴돌며 또 그런 독재자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작자 표시

작년부터 대한민국 국군 장교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합동으로 임관식을 치른다. 대한 민국 역사상 전에도 후에도 없던 아주 기발(?)한 착상이다.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 보면 일국의 대통령이 따로 따로 임관식마다 참석하기 번거로우니 모두 한자리에 모여라, 나는 대통령이다하는 식의 교만한 사고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통령이 임관식 마다 참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지금과 다른 현실에 살고 있었는가? 어떻게 60년 이상 지켜 오면서 현실적인 일들이 갑자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었는가? 이는 임관식에 대한 이 대통령의 개인적 감정이나 생각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장교 임관식에 참석하는 것은 군통수권자로서 신임 장교들의 자존심을 살려 주는 것이다. 그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 산다는 의미의 격려이며 감사의 표시이다. 그러나 꼭 대통령이 참석해야만 군의 사기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참석하기 어려우면 국방장관이나 국무총리가 참석해도 된다.

 

, 이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의 의무이자 영광스러운 역할이다. 이명박 개인이 임관식 참석을 좋아하느냐 아니냐 따질 일도 아니고 이명박 개인을 존경하느냐 아니냐 따질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 군의 총수권자로서 중요시하게 해왔고 또 당연히 해야 될 성스러운 역할을 내가 대통령인데하는 오만방자한 생각에서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소위 대통령의 끗발을 써 먹은 것으로 밖에 안보인다.  

 

그 끗발 때문에 평생 군인의 길을 가야하는 신임 장교들의 영광스럽고 명예스러운 임관식은 고통과 짜증과 불평 속에서 보내는 욕스러운 날이 되어 버렸다. 이 대통령에게 그럴 권리가 주어 졌다고  보는가? 필자가 육사를 나와서 흥분한다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필자가 보기에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신임 장교들의 임관식을 그렇게 욕되게 할 권리가 결코 없다.   

 

합동 임관식을 치루면서 신임장교들이 겪는 고충이 모 신문에 보도되었다. <“군 수뇌부의 시간은 중요하고 초임장교의 시간은 중요치 않은 것이냐”고 비판한다. 졸업과 임관이 동시에 이루어지면 휴식을 취한 후에 각 군에서 실시하는 초급장교 소양교육에 입과한다. 그런데 졸업식과 임관식을 따로 치르게 되면서 2~3일의 여유 밖에 없어 집이 먼 졸업생들은 집에 들르지 못한 채 바로 입과를 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육·해·공군사관학교와 3사관학교, 간호 사관학교, 학군단 생도들이 한꺼번에 계룡대로 몰리면 이들의 숙식에 따른 행정 소요와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자녀가 학교를 졸업할 때 부모는 자녀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과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소위 임관을 앞둔 사관학교 졸업생 부모들에게 합동 임관식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행사가 아닌 고역일 뿐이 되었단다.
 
참석인원이 3명으로 제한되니 손자의 임관식을 보고 싶어 하는 조부모를 위해 부모가 함께 참석하지 못하고 조부모와 어머니만 참석한 경우도 있었고, 또 식장에 입장할 때 몇시간, 퇴장할 때도 30~40분을 걸어야 하며, 평소 5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3~4시간 걸려서 겨우 계룡 시내로 나왔지만 식당마다 발디딜 틈이 없고, 간식조차 구할 수 없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요기를 한다고 한다. 임관식 한번 처량하다.
 
졸업식과 임관식이 분리되다 보니 학부모들이 행사에 두 번 참석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문제로 지적된다.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졸업식도 중요하고 임관식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신임장교의 부모들은 한 번은 사관학교로 또 한 번은 계룡대로 가야한다.>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임관식이 자신과 부모들에게 고역이 되는 것을 보며 신임 장교들이 무엇을 느낄지 이대통령은 생각해 보았을까?   

 

모 신문에 합동 임관식에 대한 기사가 실린 바로 그 날 다른 신문에, 이 대통령이 전방 부대를 시찰하다가, 모 일병의 소원이 뭐냐고 묻고 부대 내에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대답하자, 300만원짜리 악기 세트를 기증했다는 기사가 톱 기사로 실렸다. 그런 일 쯤 사단장이나 연대장이 할 일이지만 대통령도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자랑스럽게 톱 기사로 낼 만한 일은 아니다.

 

기자가 그냥 취재해서 기사를 썼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청와대의 요청이나 제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청와대와 조율없이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등병에게 악기셋트 사주고 크게 생색내는 대통령보다는  신임 장교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충성심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저버리지 않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그릇 치고는 너무 알량해서 해 본 소리이다.    


저작자 표시

지난 주 월요일 시드니 주요 일간지 텔레그라프에 Korea's sex call - dob in our prostitutes 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총영사관에서 시드니 지역의 몇몇 시장들에게 한국계 여성들이 시드니에서 불법적 성매매- 피해자든 가해자든- 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즉시 통보해주기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필요하다면 경찰 지원이가능하다는 내용의 공문이 발송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동 기사는 또한 이 편지를 받은 혼스비 시장이 외국 정부가 어떤 일에든 시장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편지를 받고 보니 당혹스러웠다.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불만이나 비난이 아닌 당혹의 수준이라고 보며 그렇지 않을 이유가 하등 없다.

 

그런데 이 기사가 고국의 몇몇 언론에 잘못 인용되어 마치 시드니에 논란이 크게 일고 있거나 혹은 총영사관이 격에 맞지 않는 일을 한 것 처럼 기사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펜을 들었다. 필자는 이런 기사가 호주 신문에 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을 뿐, 총영사관에서 시드니 지역 시장들에게 협조 공문을 보낸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논란이 되고 있다고 오해하는 요인을 보면, 시드니에서는 성매매 자체가 합법적이기 때문에 단속할만한 권한이나 명분이 없는데 한국계 성매매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서울의 구청장  정도의 소규모 지자체이기 때문에 외국계 정부기관으로 부터 이런 편지를 받고 시장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으로 대별된다.

 

모 언론의 기사를 보면 호주에 성매매 종사자  정보 요청 논이라는 주 제목에  "성매매 합법인 호주 측 당황" 이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고 " 한국 정부가 호주 지방정부에 ‘불법 성매매에 종사하는 한국인 정보를 알려 달라’는 서한을 보내 현지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성매매가 합법이어서 불법행위에 관여되지 않는 한 사생활을 존중하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

 

또 다른 언론도 한국 정부가 호주 시드니 지역의 주요 지방자치 단체 앞으로 한인 성매매 근절 협조 서한을 보내자 일부 지자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라고 시작되는 기사에서 구 단위의 소규모 지자체에 외국 총영사 명의의 서한이 전달되는 경우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성매매가 합법인 호주에서 이 같은 사안을 가지고 서한 협조문까지 보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오해는 호주의 행정 체계 내지는 정부 구조를 잘 모르는 데서 발생했다고 본다. 시드니 지역의 약 50여 카운슬은 시드니 시의 예하 단위가 아니다. 즉 서울시의 어느 구청처럼 시드니시의 지시나 감독을 받는 하급기관이 아니고 규모는 다르지만 시드니시와 대등한 단위의 지방 정부이다. 단지 시드니랑 같은 지역에 모여 있을 뿐이다 

 

또한 시드니나 혼스비나 필자가 시의원을 지낸 캔터베리 같은 지방 정부는 주정부나 연방 정부의 지시나 감독을 받는 하급기관이 아니고 하는 일이 전혀 다른 독립적인 자치 정부이다. 즉 연방 정부는 연방정부의 일이 있고 주정부는 주정부의 일이 있으며 지방정부는 지방정부의 일이 있다.

 

세가지 형태의 정부가 중복된 일을 하거나, 감독이나 지시를 받는 상하 기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성매매 업소를 차리고 싶다면 비지니스 허가나 등록은 주정부의 소관이지만 실제 건물에 업소를 차리는 허가는 지방 정부 소관이다. 성매매업 허가를 주정부에서 받았다고 해서 지방정부가 무조건 허가를 내주어야 하는 종속 관계가 아니다. 

 

필자가 시의원으로 있는 9년 동안 캔터베리시 관내에 성매매 업소는 한건도  승인하지 않았다. 업종은 합법이지만 개업 허가를 안해 주자 몇 업자는 시청을 고소했지만 시간을 끌자 결국 포기하고 다른 관내로 갔다. 법적 대응에 시민의 혈세는 소비했지만 관내에 성매매 업소를 막아서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또한 허가를 받지 못하자 무허가로 개업한 업소 즉 불법 업소를 2군데나 적발해 문을 닫게 했다.

 

김진수 총영사는 한국계의 불법 성매매, 즉 합법이 아닌 불법 성매매 정보를 요청했으며 그런 류의 실질적인 정보는 바로 지방 정부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또 그런 정보를 제공하고 안하고는 지방 정부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눈치를 볼 일이 아니다. 알고 보면, 효과적인 정보 획득을 위한 총영사관의 노력에 감사할 일이지 논란이 되는 일이 전혀 아니다.    

저작자 표시

호주의 브로니 웨어라는 간호사가 수년간 말기 환자 병동에서 일하면서 마지막 모습들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그 때 그 때 블로그에 올렸다가 최근에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가지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 책에, 남자의 경우 가장 후회하는 다섯가지는, 1 내 뜻대로 살걸, 2 일 좀 덜 할걸, 3 화 좀 더 낼걸, 4 친구들 챙길걸, 5 도전하며 살걸 등이라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임종 때 경이로울 정도로 맑은 정신을 갖게 되는데,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놀랍게도 후회하는 것은 거의 비슷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삶이 끝나갈 때쯤 돼서야  얼마나 많은 꿈을 이루지 못했던가 ‘명확하게’ 볼 수 있으며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기로 한 자신의 ‘선택’ 때문에 꿈의 절반조차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한다.

이 글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필자 자신과 대비해 보았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남성들은 대부분 자신과 대비해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나이 60이 넘은 분들은 한번 쯤은 지난 삶들을 되돌아 보았을 것이고 한번 쯤은 언젠가 닥칠 죽음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며 한번 쯤은 자신이 죽고 난 다음 주변에 남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니까.

내 뜻대로 살 걸에 관해서는 누가 뭐래도 결코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삶을 되돌아 보건데 하고 싶은 것은 어느 것 하나 남의 눈치 보느라 참아 본 적이 결코 없다. 고교 때 유도 선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육사를 가겠다고 했을 때, 호주에 오겠다고 했을 때, 시의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등등 그 많은 터닝 포인트마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뜻을 굽힌 적이 없다. 자랑이 아니라 성격이 그래서 참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 좀 덜 할 걸”, 이건 좀 애매하다. 죽을 때 되 보아야 알 것 같다. 필자는 30대 후반부터 나이 50되면 은퇴한다고 공언했다. 와이프한테도 항상 그랬다. 젊어 열심히 일하고 50되면 여행이나 다니며 살자고 했다. 그런데 시의원에 도전해서 당선될 때가 50이었다. 두번째 도전이었는데 와이프가 50 은퇴설을 상기 시키며 반대했었다. 다행히 당선되자 55되면 은퇴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직선 시장에 출마를 했다가 시장은 떨어졌지만 시의원에 재선되었는데 그 때가 55였다. 그 때 또 60되면 은퇴한다고 했었다. 와이프는 웃었다. 그 때 되면 또 딴소리 할 것 뻔하니까. 60이 되었을 때 시의원은 은퇴했지만 이스트우드에 세번째 부동산 사무실을 열었다. 그리고 65가 되면 진짜 은퇴한다고 했었다. 이제  2년 남았는데 필자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2년 후 은퇴를 할지 또 딴소리를 할지도 모르겠고, 은퇴를 한다 해도 은퇴해서 행복할지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항상  일을 좀 줄이고 싶은데 성격상 줄이지 못하고 있는 판이니, 일을 줄이고 나서 죽을지 줄이기 전에 죽을지, 줄이고 난 다음 만족해 할지 아니면 줄이고 난 다음 후회할지 도대체가 감이 없어서 이것은 두고 보아야 겠다.

그런데 호주 사람들 일 좀 덜 할걸하고 후회한다는데, 일을 많이 해서 후회하는지 아니면 많이 하지도 않고 괜히 게으른 생각에 후회하는지 모르겠다. 38시간 근무 시간이 보장된지 오래된 나라에서, 실업자 수당으로 평생을 살다가 늙으면 노인수당이 나오는 나라에서, 일을 하면 얼마나 했다고 일 좀 덜할 걸 하며 죽어간다는 말인지, .

화좀 더 낼 걸”, 이것은 확실히 화 좀 덜 낼걸후회하며 죽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화 좀 더 낼걸, 후회하는 사람들이 화를 잘 내지 않은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화를 잘 내던 사람이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모를 일이지만, 필자는 화를 덜 내자고 평소에도 맨날 후회하며 살기 때문에, 갑자기 도통하지 않는 한 이것은 죽을 때까지도 그럴 것 같다.

친구 좀 챙길 걸은 그저 그런 얘기이니 생략하고, “도전하며 살 걸은 후회할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니 생략한다. 뭔 소리냐고? 필자의 인생은 단언하건데 도전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도전할 만한 껀수가 있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판이니 무슨 후회가 있겠는가. 독자 여러분도 어떻게 대비해 보셨습니까?
저작자 표시

오스트랄리안 데이(이하 오지데이)에 호주 국기를 차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백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러 항목을 설문으로 조사한 결과 차에 국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있다고 분석하는 기사가 지난 주 호주일보에 있었다. 물론  단순한 애국심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 기사를 보니 옛날 일이 생각난다. 이민와서 얼마 안돼, 어느 날 국기를 달고 다니는 차들이 보였다. “갑자기 웬 국기?” 하고 알아 보니 호주 건국 기념일에 해당하는 오지데이를 축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음 해에는 필자도 오지데이에 차에 국기를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 건국 기념일에 국기를 다는 것은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지켜야하는 국민의 도리이며 또 애국심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국기를 단 차량들 끼리는 서로 크랙션을 울리거나 손신호를 하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동류 의식이나 친밀감을 나타내는 것을 느끼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호등에 서 있는데 옆 차선에 국기를 달고 나란히 서 있던 운전자가 필자와 눈이 마주쳤다. 필자가 반갑게 손신호를 보냈는데 같이 손신호를 보내다가 멈칫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동양계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같았다.

 

동양계가 호주 국기를 달고 다니다니 의외네?” 하는 것 같았다. “동양계는 호주를 내 나라로 생각하면 안돼?”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 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모두들 생소해하거나 의아해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젊은 운전자가 추월해 지나가면서 크락션을 울리더니 필자가 보자 국기를 가리키며 야유성 신호를  보냈다. “동양계가 주제넘게 국기를 달고 다니다니!” 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바로 국기를 뗐다. 불쾌하고 황당했다. “이민의 나라에서 이민자가 호주를 자기 나라로 생각하고 애국심을 갖겠다는데 뭐가 잘못되었단 말이야?”하는 반발심과 백인들만 호주를 자기 나라로 생각하는 주인 의식에 대한 불쾌감이었다. 그들은 애국심이 아니라 우월감으로 국기를 달고 다닌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같이 달고 다닌게 창피했다시의원 출마 결심을 굳힌 이유 중의 하나였다.

 

필자는 한민족이라는 내 민족을 사랑하는 애족심과 함께 호주라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국에 살 때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말 즉 애국과 애족이 동의어로 쓰일 수 있지만 이민와서 사는 우리에게는 애국과 애족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과 호주를 내 나라로 생각하자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 아리랑이라는 12권짜리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군이 자생하며 얼키고 설킬 때, 민족주의적 독립군과 왕정복구적 독립군이 대립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양반을 중심으로한 왕조 복구를 위한 독립운동과, 개화된 양반과 서민을 중심으로한 민족 해방을 위한 독립 운동이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왕조 즉 나라와 민족을 구별하는 의식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호주에 이민와서 살고 있는 우리는 호주 국민이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다. 이중 국적이 허용된다면 두 나라 국민이 될 수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법 논리일 뿐이다. 세금을 내고 보호를 받으며 사는 곳이 내 나라이다.  그러나 호주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한()민족이다. 한국 민족이 아니고 한()민족이며 중국계의 한() 민족이 아니고 우리 고유의 민족인 한()민족이다.

 

김진명씨의 천년의 금서라는 최근의 소설을 지난 주에 읽었다. 우리 한() 민족은 단군조선 보다 700년 전에 이미 천체를 관측하고 조류를 분석할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국가를 세운 민족이었으며, 이는 중국의 은나라나  주나라 보다도 1000년이나 앞섰다고 한다. 단순한 소설로 볼 수 없는 자료와 근거를 제시한다.

 

이것이 민족이라는 개념이다. 나라는 사라지고 세워지며 흥망이 계속되지만 민족은 문화와 얼을 지키는 한 영원히 존재한다. 어쩔 수 없이 만주나 사할린으로 끌려 가야 했던 실향민들이 귀국하고 싶어하는 것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인지상정이며, 또 그 나라 국민으로서 권익을 보호받지 못할 때의 얘기이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그 나라 국민으로 권익을 누리며 사는 우리들은 사는 곳 그 곳이 곧 우리 민족의 터전이다. 우리의 문화와 얼만 간직한다면 말이다. 인종적 우월감보다는 애국적 유대감으로 차에 국기를 달게 될 날이 언젠가 올 것으로 본다.   

저작자 표시

지난 토요일 안드류 윌키 무소속 의원이 노동당 지지를 철회한다고 선언했다. 무소속 의원 하나가 집권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2010년 연방 정부 선거가 끝 난 직후 자유당 연립과 노동당이 73 73으로 팽팽히 맞섰을 때 무소속 3명과 그린 소속 1명이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정권의 향방이 결정나는 그 아슬아슬한 시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사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 동안 하원 의석 수에 변화가 생겨서 윌키의원의 지지 철회에도 불구하고 74 75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현정권이 그대로 존속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윌키의원은 지지 철회를 선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왜일까? 윌키의원의 지지가 필수적일 때 쥴리아 길라드 수상이 한 약속, 즉 도박 법안을 2012 5월까지 개정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길라드 수상이 정권을 잡느냐 마느냐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이 있었다. 72 72 72 73이 되고, 73 73이 되고, 그러다 73 74가 되었다. 토니 아보트와 줄리아 길라드가 무소속 의원들과 줄다리기를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이긴 것으로 믿고 있었던  그 때는 무소속 의원이 하늘의 별을 따다 달라고 해도 그러자고 약속할 판이었다.

 

호주에서의 여당과 야당은 올 오아 낫씽이다. 한국이 더 심할 것 같지만 사실 한국은 농성도 하고 의장석 점거도 한다. 자리나 직책을 여야가 서로 나누어 먹는 이상한 국회법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원칙이 지켜지는 이 곳은 철저히 올 오아 낫씽이다. 그러한 호주에서 여당이 되느냐 야당이 되느냐 하는 치명적 순간에 길라드 수상은 윌키의원에게 서면으로 도박법 개정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지지가 없더라도 정권의 향방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급한 볼 일이 끝난 순간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그에 따른 이미지 실추나 배신이라는 비난을 받을 줄 알면서도 왜 약속을 깨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도박업자들로 부터 거두어 들이는 세수가 그렇게도 중요한지 아니면 도박업자들의 로비, 특히 양대 정당간의 지지율이 박빙인 지역의 로비를 무시할 수 없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약속을 어겼느냐 아니냐도  아니고, 지지 철회가 정권의 향방을 바꾸느냐 아니냐  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인 입지가 어떻고 도박 업자들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세수가 얼마나 큰가 하는것도 아니다. 도박이 가져오는 폐해가 당사자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생산성 협회(Productivity commission)라는 기구가 있다. 경제,사회, 환경 등 새로운 정책을 개발할 때 그 타당성을 조사 연구하는 연방정부 내 독립된 연구 자문기관이다. 이 협회가 2010년 도박 문제 해결 방안을 연구한 레포트를 제출했는데 그 레포트에서 현재 크게 잇슈가 문제가 되고 있는 사전 자진 한정 제도가 도박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의 방책이라고 밝혔다.

 

즉 자신의 자금 능력이나 기타 조건을 고려하여 도박에 탕진할 한도 금액을 사전에 스스로 정해 입력하면 나중에  그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하자는 법안이다. 이를 위해 포커머신에 소프트 웨어를 장착해야 하며 기타 비용은 들겠지만 일단 셋업이 되면 한도 금액을 초과해서는 포커머신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방안은 도박 반대자들 뿐 아니라 도박 중독자들도 환영하고 있다. 도박 중독자들도 자신들이 얼마까지 잃을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중독 여부에 상관없이 돈을 잃고 나면 자제력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제력을 잃은 자신들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적 체제를 정부가 나서서 구축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도박업자들의 로비에 흔들리며 세수나 생각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도박 반대자들은 보통 사람들의 고통으로 (도박 관련) 기업의 부를 축척한다고 말한다. 닉 세노폰 무소속 상원의원은 포커머신 업자들의 로비를 보면, 19세기 미국의 노예 소유주들이 약간의 변화라도 있게 된다면 자신들의 삶 전체를 망친다던 말이 연상된다고 말한다. 도박 중독자들을 포커 머신(업자)라는 주인에 매인 노

예로 보는 것 같다. 길라드 수상을 포함하여 위정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라고 본다.

저작자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