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수 KGAC (정관장 호주대표)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건이자 경사다. 동시에 태어난 그 존재들이 살아 간다는 것은 거룩하면서도 가시밭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인간은 생존해야 될 권리와 의무도 함께 있다.
이런 우리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비유해 본다면 우리 인간도 이 세상에 태어나려고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고자 발버둥치며 안간힘을 다 하고 있는 것과 같이 물살이 쎈 여울물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시도 쉴 사이 없이 한사코 헤엄치면서 살고 있는 쏘가리들과 똑같이 살기 위헤서 또는 무엇인가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모든 생명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는 무엇인가 부끄러움이 있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경제적 동물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은 경쟁과 투쟁을 도구로 하는 허영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자책을 가끔 하게 된다.
이런 각박한 현실들을 잠시 내려놓고 진실만이 속삭이는 자연으로 돌아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시간들을 간혹 가져보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뒤돌아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요즈음 이런 시간들을 가져보지 못하다 보니 내 삶이 너무 단조롭고 팍팍한 것 같아 오랫만에 잠시 야외 나들이를 해 보았다. 찾아간 곳은 내가 가끔 자연과 함께 지내고 싶을 때 찾아가던 와이즈맨 페리 근처의 혹스베리 강변의 아주 허름한 작은 움막집이다. 우선 베란다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앞을 바라보니 언제나 변함없이 똑같은 자태로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혹스베리 강의 전경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윽고 한참만에! 그래, 저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둥근 그릇에선 둥글게, 모가 난 곳에선 모가 지게, 많이 모아도 물, 작게 갈라놓아도 물은 물인 것이다. 또한 끓여서 증발하여도 물이요, 얼어서 얼음이 되어도 물이다. 이렇게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지만 끝내 자기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물인 것이다. 또한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 지금 내 시야에 펼쳐진 강물이 되고 이것이 결국엔 바다가 된다. 한 방울의 물은 아무것도 아니나 바다의 성난 파도는 어떠한 것도 집어 삼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즉 가장 유약한 것 같지만 가장 강할 수도 있는 것이 물이다. 이런 물처럼 확신과 겸손이 함께 어우러진 삶을 살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게 된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만사를 다 헤어리고 갈 수는 없겠지만 저 물과 같이 자기가 타고난 성품대로 물가에 핀 꽃이면 물가에 핀 꽃처럼, 돌이 놓여있을 자리면 돌이 놓여있을 만큼의 자리에서 겸손하게 자기 구실을 다하고 가면 그것이 이 세상에 타고난 자기의 몫이거늘 과연 나 자신은 그렇게 살았는지 조용히 반성해 본다. 또한 다른 사람의 몫을 넘보거나 잘못했다고 탓하지는 않았는지?
인간들은 누구나 다 자기몫이 있으니까 그 존재들을 다 함께 인정해야 되고 또 자기 몫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말고 내 스스로가 다 소화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일컬어 동고동락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엔 한국정부에서도 생태학적 개념을 보완한 공생발전이 하나의 화두로 제시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동고동락 관계의 개념과 유사한 것들이 아닐까? 이것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대기업의 독주로 중소기업과 중산층이 붕괴되면 대기업은 살고 중소기업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공멸하는 것이니 다 함께 살려면 친환경적이면서 윤리 경영을 해야 된다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시의적절한 제안이라고 본다.
우주만물의 모든 원리가 이와 똑같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편하고 즐거운 것만 동락하려고 하며 힘들고 어려운 것은 동고하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동고동락이라는 단어 자체도 동고가 먼저 오듯이 세상만사가 고생끝에 락이 온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 현사회의 실상은 어떤가? 생명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며 또 분열시키고 죽이기도 하면서 동고동락하겠다는 말을 쉽게 하니 이만 저만한 이율배반이 아닌 것 같다. 이런 삶의 질서에 종래의 관성의 법칙이 되풀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닌 새로운 변화가 와서 인간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고 회복하는 광범위한 운동이 무엇보다 먼저 선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즉, 모든 인간들이 모든 것이 영원한 것으로 알고 자기 혼자만 가지려고 한다는데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세상 모든것은 창조주의 소유이지 우리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것이다. 최종적으로 자기 소유물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거 잠시 빌려쓰다가 되돌려 주고 가는 것인데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 연민의 정을 느낄 때가 있다. 너무 많이 빌리면 임대료도 많고 관리비가 많아져서 오히려 부담만 커질 터인데!
이런 환경속에 하나님 나라인 절대 세계에서의 포도밭 일꾼들에게 주는 품삯의 계산법이 적용되는 그런 세상이 오면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쨋든 모든 사람들이 물의 겸손함과 정체성을 닮는 그런 삶을 살수 있다면 온 세상에 온전한 평화가 찾아올 것 같은 상상을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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