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오후 2시 Drummoyne에 위치한 한 주택에서는 올해 88세를 맞은 파란눈의 한 백발 할머니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베트남 참전 유공자회 이윤화 회장의 주도로 3년전부터 6.25 참전 유공자회 등 군 단체들 관계자들과 그린여사의 가족 친구들이 함게 해 축하를 해 오고 있다.
아직까지 하루 세끼 밥 먹을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인 미수는 88세 나이를 이르는 또 다른 말로 아직도 건강하고 밝게 생활해 오고 있는 88세 그린 여사에게 이번 생일잔치는 어느 해보다 뜻있는 자리였다.
그녀는 찰스그린 중령의 아내로 남편을 잃은 후 60여년을 넘게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온 한국전 전쟁 미망인이다.
한국전쟁이 터지자마자 호주 육군 제 3대대 대대장으로 임명받고 부산에 상륙한 찰스 그린 중령은 연천과 박천 그리고 정주 등 한국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북진을 계속하다 달천강 근처에서 북한군이 쏜 포탄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그때가 1950년 11월 1일 오후 8시 찰스중령의 나이 30세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정규군이 없었던 호주는 1948년에야 군대를 창설하였고 한국전쟁은 호주가 정규군으로 참전한 첫 번째 전쟁이었으며 찰스 중령은 첫번째 파병부대였던 제 3대대의 대대장이었다. 그는 호주 전투사에서 대대장으로 전사했던 유일한 희생자이자 영웅이다.
“정말 이곳은 춥군요. 얼음이 얼고 맑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추운 날씨와 함께 외로움도 몰려옵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빨리 집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낯설고 물선 남의 나라 남의 전쟁에 참석해 혹한의 겨울을 견디며 썼던 이 편지는 그가 전사하기 일주일 전에 쓴 편지다. 아마도 그가 외로움과 추위를 견디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고 조국이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그 나라가 바로 나의 조국 한국이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땅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는지 생각지도 않고 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지도 모르겠다.
책상머리에 앉아 우리는 왜 싸워야 했고 누구로 인해 아직도 분단돼 있느냐는 학자들의 사람들의 말과 글을 외우고 공부만 할 뿐 정작 그 현실에서 뜨거운 피를 가진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어간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는 가슴 아파하지 않는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많은 젋은 세대에게 6.25 한국전쟁은 학교에서 배운 기억하지도 못할 수 많은 전쟁중에 하나일 뿐이고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여권 커버에서나 한두번 보는 단어가 돼 버렸다.
다음달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고 이어 개천절, 개헌절 등 10월은 명실공히 나라사랑의 달이다. 달력에 표시된 국경일로 무심코 보기보다 한번쯤 그 사람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 놓았던 그 분들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살아있어서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을 가졌을 그 사람들,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그리워했을 바로 그 사람들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죽어갔음을 기억하자.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고 또 그 남편이 묻혀있는 곳,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살다 자신도 곧 묻히게 될 땅 대한민국, 한국사람보다 한국에 대해 더 사무치는 정이 있어 눈물을 흘리는 그린여사의 조촐한 생일파티를 보며 박수 치며 노래는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녀 앞에 너무나 죄송스럽고 부끄럽고 마음 뿐이다. 편집국장 차정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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