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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오후 2시 Drummoyne에 위치한 한 주택에서는 올해 88세를 맞은 파란눈의 한 백발 할머니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베트남 참전 유공자회 이윤화 회장의 주도로 3년전부터 6.25 참전 유공자회 등 군 단체들 관계자들과 그린여사의 가족 친구들이 함게 해 축하를 해 오고 있다.

아직까지 하루 세끼 밥 먹을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인 미수는 88세 나이를 이르는 또 다른 말로 아직도 건강하고 밝게 생활해 오고 있는 88세 그린 여사에게 이번 생일잔치는 어느 해보다 뜻있는 자리였다.

그녀는 찰스그린 중령의 아내로 남편을 잃은 후 60여년을 넘게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온 한국전 전쟁 미망인이다.

한국전쟁이 터지자마자 호주 육군 제 3대대 대대장으로 임명받고 부산에 상륙한 찰스 그린 중령은 연천과 박천 그리고 정주 등 한국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북진을 계속하다 달천강 근처에서 북한군이 쏜 포탄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그때가 1950년 11월 1일 오후 8시 찰스중령의 나이 30세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정규군이 없었던 호주는 1948년에야 군대를 창설하였고 한국전쟁은 호주가 정규군으로 참전한 첫 번째 전쟁이었으며 찰스 중령은 첫번째 파병부대였던 제 3대대의 대대장이었다. 그는 호주 전투사에서 대대장으로 전사했던 유일한 희생자이자 영웅이다.

“정말 이곳은 춥군요. 얼음이 얼고 맑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추운 날씨와 함께 외로움도 몰려옵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빨리 집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낯설고 물선 남의 나라 남의 전쟁에 참석해 혹한의 겨울을 견디며 썼던 이 편지는 그가 전사하기 일주일 전에 쓴 편지다. 아마도 그가 외로움과 추위를 견디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고 조국이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그 나라가 바로 나의 조국 한국이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땅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는지 생각지도 않고 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지도 모르겠다.

책상머리에 앉아 우리는 왜 싸워야 했고 누구로 인해 아직도 분단돼 있느냐는 학자들의 사람들의 말과 글을 외우고 공부만 할 뿐 정작 그 현실에서 뜨거운 피를 가진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어간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는 가슴 아파하지 않는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많은 젋은 세대에게 6.25 한국전쟁은 학교에서 배운 기억하지도 못할 수 많은 전쟁중에 하나일 뿐이고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여권 커버에서나 한두번 보는 단어가 돼 버렸다.

다음달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고 이어 개천절, 개헌절 등 10월은 명실공히 나라사랑의 달이다. 달력에 표시된 국경일로 무심코 보기보다 한번쯤 그 사람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 놓았던 그  분들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살아있어서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을 가졌을 그 사람들,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그리워했을 바로 그 사람들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죽어갔음을 기억하자.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고 또 그 남편이 묻혀있는 곳,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살다 자신도 곧 묻히게 될 땅 대한민국, 한국사람보다 한국에 대해 더 사무치는 정이 있어 눈물을 흘리는 그린여사의 조촐한 생일파티를 보며 박수 치며 노래는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녀 앞에 너무나 죄송스럽고 부끄럽고 마음 뿐이다.  편집국장 차정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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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이었다. 모두들 그리운 고향으로 찾아가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는 날 이곳 시드니에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 고향을 빼앗긴 이북 5도민들의 망향제가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있었다.

재호 이북 도민회 연합회 조재극 회장을 비롯한 행사 관계자와 김진수 총영사, 손아브리함 목사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행사는 망향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온 겨레의 숙원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기원제에 가까웠다.

남과 북으로 갈려 먼 북녘 고향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시드니 이북 5도민들 그리고 조국의 실향민들이 꿈에도 그리는 그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통일을 기원하는 조재극 회장의 선언문에서 시작해 지금 이 시간에도 애타는 마음으로 부모형제를 그리며 살고 있는 실향민들을 기억해 주시어 하루빨리 한반도가 하나되게 해 달라는 손아브라함 목사의 축복 기도에 이르기까지 행사는 초지일관 수구초심으로 일관했다.

얼마전 한국에서는 추석을 며칠 앞두고 반세기 이상을 찢어져 살아온 이들의 2박 3일 짧은 만남의 행사가 있었다. 75세 된 딸이 100세의 어머니를 만나고 70대 중반을 넘긴 딸이 95세 할아버지를 만나 ‘우리 온 가족이 다 함께 살 수 있는 그 세월이 올 때까지 오래 오래 살자’는 인사는 이미 인사가 아니라 그때까지 눈조차 감을 수 없다는 약속과 다짐으로 들린다.

한국에서만도 고향을 지척에 두고 찾아갈 고향이 없고 북에 남겨진 가족을 만날 수 없는 국민들의 수가 1천만명을 넘는다고 하니 결국 전국민의 25%가 실향민인 셈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그 곳을 떠나 가슴 저미고 애타는 심정으로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실향민이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전쟁이나 강제동원, 경제적 이유 등 외적 조건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원치 않는 낯선 곳에서 살게된 사람들을 실향민이라고 정의한다면 이곳 시드니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어쩌면 실향민이다. 21세기 실향민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먹고 살기 아둥바둥 삶의 여유도 없이 말 그대로 이역만리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 와 사는 이곳 시드니 교민들은 추석이 아니라 몇년에 한번 한국행 비행기 끊기도 어렵다. 물리적 강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상 몸은 이 땅에 묶여 있을 수 밖에 없는 일부 시드니의 교민들, 유학생들,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이 바로 21세기 실향민들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란 그 사람들을 만나 관심을 보이고 걱정하는 마음을 나누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21세기 실향민인 우리에게, 그리고 이북 5도 모든 실향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아픔에 공감해 주는 것이다.

통일이 되어 남북한이 얼싸안고 더덩실 춤출 그 날에 앞서 우리에게 우선되는 그 무언가는 이해와 나눔이다. 그리운 옛임과 어릴 적 고향 동무들, 들에 난 풀 한포기 골목 어귀에 핀 꽃 한송이를 떠올리며 어렴풋하나마 먼 고향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그런 자리, 다음 번 망향제는 이북 5도민만의 제가 아닌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모든 시드니 교민들, 21세기 실향민들이 한자리에 어울리는 화합과 축제의 자리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편집국장 차정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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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총선이 하루 앞으로 선뜻 다가오면서 온 국민들의 몸과 마음이 선거에 대한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있다. 호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이목이 호주 연방선거로 쏠리고 있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연방 총선을 앞두고 본보의 블로그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하루 방문객이 3~4000명에서 많을때는 5000명을 겨우(?- 이것도 대단한데) 넘었었는데, 이번 수요일에는 방문객이 무려 3만명이 넘었다. 오전 10시경에 7000명을 넘어서는 것을 보며 아마도 블로그에 이상이 생겼나 보다 생각했다. 오전 10시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하루 종일 방문객의 2배에 달했으니 제대로 된 것이라고 믿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매시간마다 1000명가까이 늘더니 웬걸, 오후 4시경이 되어서는 2만명이 넘었다. 그래서 일부러 대충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인 밤12시 까지 기다리다 다시 한번 더 확인해보니 30590명이되었다. 섬머타임 때문에 한국과의 시간이 차이가 남으로, 정확하게 몇시에 통계가 마감되었는지는 모르지만 3만명을 훌쩍 넘어선 것은 확실하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왜 갑자기 본보 블로그에 방문객이 이렇게 폭주하는 것일까? 본 기자는 그 이유를 생각하다, 현재 호주 자유당에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한국계 남경국 후보의 지역구 출마가 생각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것 밖에는 이유가 없었다. 전세계의 동포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과 미국에 있는 동포들이 한국계 후보의 출마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소식을 집중 보도하는 본보의 블로그에 밀려들어오는 것으로 보인다.

본보 발행인이자 9년간 캔터베리시의원을 지낸 남기성(죠슈아 남) 전의원은 이번에 "자유당후보"로 출마한 남경국 의원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같은 곳에서 시의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주사회는 물론 전 세계 동포들의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한데, 그 아들이 지역구 후보로 연방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니,당연히 해외동포들과 한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동당은 텃밭인 빅토리아 주에서, 자유당은 퀸슬랜드 주 및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각각 우세를 보이고 있는데, 현재 나머지 주 및 준주(準州) 에서는 각 당 후보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과 자유당의 양대 정당은 대표를 비롯, 각 후보들이 막바지 선거유세에 나서 한 표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치열한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선거를 하루 앞둔 현재까지도 선거의 흐름은 그 방향을 가름하지 못할 만큼 좌충우돌(左衝右突)하고 있다. 그만큼 치열하다는 증거이기도 한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야 중 누가 집권해도 이행하지 못할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추세다. 한국이나 호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선거 공약을 선심성 공약으로 남발하는 후보와 정당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양대 정당의 절대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당이 승리를 하든지 크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특히 동포들 중 대다수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자유당이냐 노동당이냐 하는데에는 관심이 전혀 없더라도 한국계 이민1.5 세대인 '남경국 후보'가 당선이되느냐 아니냐는 것은 우리 동포들에게 지대한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남후보의 행보가 많은 이들의 희망과 꿈이 되고, 특히 이민 2,3세들이 미래를 꿈꾸며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모두가 긍정의힘으로 투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호주사회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함으로서, 한국인을 대표해 '모퉁이 돌'이 되어서라도 한국과 호주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이루어 나가는데 어떤 계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라고 본다. 이제 내일이면 선거가 끝나고 결과가 나온다.
그 결과가 나온 후 2-3일 동안 본보의 블로그에 얼마나 많은 방문객들이 몰려들지 다시 한번 기대가 된다. cis@hojuilbo 차인순 편집국장

지난주 금요일 한인회관에서 전호주 한인 골프선수권 대회 시상식이 있었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함께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노래와 춤을 즐기며 흥겨운 파티에 흠뻑 빠졌다. 이날만큼은 행사를 축하하고자 참석한 귀빈들도 귀빈이 아닌 파티의 일원이 되어 함께 노래를 부르고 게임에 참여하는 그야말로 축제 한마당이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승원홍 현 한인회장과 김병일 한인회장 당선자의 모습이었다. 승 회장과 김 당선자는 잔을 마주치며 한바탕 웃어 젖히고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함께 마이크를 잡고 듀엣으로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 보였다. 행사장의 분위기는 고조에 달해 모두가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관위와 한인회의 문제로 양측은 대면하기에 썩 달갑지 않은 상대였을 것이다. 승 회장은 재출마를 선언했다가 사퇴를 선언했고, 김 회장은 한인회가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선관위에 등록했다. 어찌 보면 경쟁자이자, 갈등의 상대였다.

승 회장은 사퇴 이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다 비웠다”고 했지만 “임시총회를 강행하겠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질문에도 “다 비웠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 정확한 대답을 피하는 듯한 느낌에 나는 승 회장의 말이 썩 진심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단지 달갑지 않은(?) 기자의 인터뷰를 어서 끝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김병일 당선자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승원홍 회장의 표정은 마치 오랜 친구와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노래라는 것이 진정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것인데, 어깨를 감싸고 시원스레 노래를 부르는 승원홍 회장과 김병일 당선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다 비웠다”는 승원홍 회장의 한마디가 진심으로 와 닿았다.

한인회와 선관위의 갈등으로 본의 아니게 마음고생이 심했을 김병일 당선자 또한 승 회장과 정겹게 노래를 부르며 지난 문제들은 훌훌 털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두 분은 더 이상 경쟁의 관계도 갈등의 상대도 아닌 한인회장의 선후임이자 한인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리더가 되어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분들의 모습을 지켜본 어느 원로는 “여느 때의 이취임식보다 보기 좋은 장면이다. 마치 27대 한인회장 이취임식의 전야제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밤은 이미 깊었지만,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한인회관을 가득 채우고 오가는 술잔에 정이 넘치니 축제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지난 임시총회에서 선관위의 활동이 추인되고 김병일 당선자 또한 당선이 확정됐지만 일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이 분들도 승원홍 회장과 김병일 당선자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간의 갈등과 잡음을 모두 잊고, 다가올 한인사회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보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승원홍 회장과 김병일 당선자가 함께 불렀던 노래의 후렴구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이영선 기자
지난 26일, 한인회관에서 제26대 한인회장 후보정견 발표회 및 패널 토론회가 있었다. 패널토론이란 것이 무엇인가? 서로 의견이나 입장이 다른 사람들 4-6인이 모여 공개 토론을 하면서 서로의 자격이나 기준, 혹은 부족한 점이나 틀린 점들을 들추어 보고 그래서 후보같은 인물이나 기타 사안을 검증해 보는 형식이다.

본 기자는 그 동안 후보들의 열띤 선거 운동을 보면서, 그리고 광고나 기타 매체의 홍보 자료들을 보면서 몇가지 점들을 파헤쳐 검증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내심 패널 토론회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준비를 했다.

본 기자가 짚고 싶은 점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주최 측이 4가지로 제한했기에 (1)발족되었다는 소위 유권자 협회에 대한 후보들의 의견 (2)문화회관 건립추진 위원회에 대한 후보들의 생각 (3)해외 동포들의 고국 참정권에 대한 후보들의 생각 (4)교민들이 한인회의 대표성을 인정한다고 보는가 등의 질문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질문을 2가지로 제한했다. 그것도 주최측이 일방적으로 2개의 질문을 선택해서 삭제해 버렸다. 주최 측이 패널의 질문을 일방적으로 삭제 해버리다니 패널 토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부터 무시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옥의 티 일(1)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2가지로 질문을 제한했다면 본 기자는 “유권자 협회”와 “문화회관 추진위” 문제를 선택했을 것이다. 4가지를 제출하도록 해놓고 마지막 단계에서 주최측 마음대로 2가지를 삭제하다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유인즉, 중복되고 신선하지 못한 질문들을 선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런 것들은 토론 중 걸러질 것이었다.

또 한가지 짚고 싶은 것은 앵무새처럼 묻고 답하는 기자 회견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패널 토론회라는 것은 상호간의 의견을 듣고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것을 듣는 참관자나 제 3자로 하여금 누구의 의견이 옳고 누구의 생각에 공감이 가는지 재어보는 토론 형식이다.

그런데 묻고 답하는 형식을 취하려다가 패널(?)들이 항의하자 단 한번의 질문을 허락한다는것이었다. 결국 그 마져 지켜지지 않아서 말만 패널 토론이지 실재는 기자들이 묻고 후보들이 답하는 그야말로 모범 답안적 기자회견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옥의 티 이(2)였다.

이런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몇몇 신문사들이 합동 기자 회견이니 뭐니 하면서 홍보물에 나옴직한 내용이나 답이 뻔한 것들을 가지고 묻고 답해서 쓴 것보다는, 주최 측도 짜임새가 있었고 후보들의 답도 성의가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역대 어느 선관위가 패널 토론이라는 것을 생각이나 해 보았던가. 옥에 티만 없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김미란 기자

일반적으로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재산상의 이득을 취함으로써 성립되는 범죄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 기망이란 사람을 착오에 빠트리게 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한마디로 말해 거짓으로 사람을 현혹해 개인적인 재산상의 이익을 꾀하는 모든 행위가 사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 당사자가 진실을 알려야 하는 의무를 고의적으로 져버렸을 때 비로서 사기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기사건의 경우, 피해자측과 가해자측의 주장은 항상 엇갈린다.

즉, 피해자측은 가해자가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가해자측은 진실을 알렸지만 결과가 좋지않았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동일인으로부터 같은 식의 피해를 입은 경우가 다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매번 의도는 순수했지만 결과가 나빴을 뿐이라고 똑 같은 말을 되풀이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지난 주(15일자) 보도된 ‘유학생 학부모 사기피해 호소’기사와 관련해 자신 역시, 또 다른 피해자라며 한 여성독자가 금주 본보 편집국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그 여성독자는 기사본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학원체인점 운영권 인수명목으로 실제금액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기사 속 동일인물에게 속아서 지불했으며 그 중 상당부분을 그가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만 속으로 가슴앓이를 해 오던 중에 지난 주 기사를 보고 난 뒤에야 용기를 내어 연락을 하게 됐다고 그 독자는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 말고도 다른 여러 사람의 피해자가 더 있다고 귀 뜸도 해주었다.

결국, 이번 일이 단순 일회성이 아닌 그 동안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꾸준히 자행되어져 온 상습적인 사기 행각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재훈 기자


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은 2박3일간의 호주 국빈방문 공식일정을 마치고 다음 방문지인 뉴질랜드로 떠나기 앞서 한인동포 400여명을 초청, 동포 간담회를 가졌다.

이 날 노대통령은 예정된 짧은 시간 동안 현 정부의 국가발전 전략에 대해 상세히 언급했다.

그 중 가장 기자의 관심을 끈 노대통령의 발언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에 대한 것이었다.

노대통령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건설의 선행조건으로 정치적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과거 군사독재시절부터 뿌리깊게 자리잡은 부정부패구조나 특권의식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 문민정부 이후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소개한 뒤, 현재는 이 같은 모순들이 상당부분 해소되면서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건설이 거의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최근까지 청와대 사칭 사기꾼들이 있음을 예로 들면서 아직도 어딘가에 뒷거래가 존재하고 권위가 남아있음을 인정했다.

바로 이 대목이 기자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국가원수가 해외순방을 할 때 마다 으레 빠지지 않는 공식행사가 해당국가거주 한인동포들과의 간담회다.

비록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거주하는 동포지만 결국 뿌리는 한국이기에 모국 국가원수와의 간담회는 동포입장에서 보면 형식적인 의미 이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정최고 책임자를 통해 해외동포로서 가질 수 있는 요구사항을 건의함으로써 모국정부로부터 모종(?)의 해결책 얻고자 하는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의 역대 간담회를 보면 거의 형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원수가 일방적으로 연설하거나 아니면 미리 준비된 질문에 대해 판에 박힌 듯한 답변으로 일관 했던 것이 그 동안 우리가 접했던 동포 간담회의 실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노대통령과의 간담회 역시, 이전과는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45분 동안의 짧은 시간 동안 노대통령은 국정과 관련한 연설로 매진했고 참석한 동포들은 질문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노대통령 역시, 스스로 ‘권위’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면 단순히 기자 본인만의 비약일까?

아니면, 대화를 통한 토론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선호하는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성급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바쁜 일정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내년에 호주에서 개최될 APEC 정상회의 때 다시 한번의 기회가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지만 못내 아쉬운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이재훈 기자

지난 주 본보(17일자) 3면 머릿기사로 ‘워홀비자 임금문제, 살호불신조장’이라는 제목과 함께 최근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는 한인사업장 내 고용주와 워킹홀리데이비자 소지 고용인 간의 임금문제를 둘러싼 감정싸움을 다룬 기사가 나가자 본사 편집국으로 몇몇 독자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최저임금을 지불하라며 한인사회의 현 경제현실은 외면한 체 자신들의 권리만 막무가내식으로 주장하는 일부 워홀비자소지자들과 임시거주 신분상 언제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이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일부 고용주들이 자구책(?)으로 1-2주의 임금을 보증금 명목으로 묶어두는 잘못된 고용행태를 지적하는 기사내용에 관한 독자의견 개진이었다.

그 중 평소 본보 애독자라며 현재 청소업을 하고 있다는 한 독자는 기사내용에 지적된 것처럼 저임금 문제로 고용주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부 워홀비자 소지자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 그대로 일부일 뿐 다 그 그런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재 자신 역시, 워홀비자 소지자들을 고용하고 있지만 이들과 임금문제와 관련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돈독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워홀비자 소지 고용인에 대해 이들이 예고 없이 어느날 갑자기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고용주의 불안감은 기사에서 표현된 것과 같은 단순한 막연함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이유로 이들의 임금 일정부분을 보증금 명목으로 묶어두지는 않는다며 대신, 처음 고용할 때 그 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그 사람이 성실한지 아닌지를 충분히 고려한 뒤 고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현재 시내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며 부업으로 청소용역을 맡아 한적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성독자는 자신이 고용한 워홀비자 소지자로 인해 크나큰 손실을 입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유인즉, 자신이 맡고있는 청소용역 현장에서 일하던 워홀비자소지 고용인들의 불성실하고 무책임함 때문에 용역계약을 시작한 지 8주만에 계약파기 되었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늦기가 일쑤이고 청소상태 또한 불량인 관계로 그 동안 해당업체 담당자로부터 몇 차례에 걸친 지적을 받아 왔지만 시정이 제대로 되지않아 결국 해당업체로부터 계약파기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청소매매를 통해 용역계약을 받았지만 시작한 지 8주만에 계약은 파기되고 그나마 마지막 4주치 용역대금은 아직 받지도 못해 금전적 손실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당사자였던 워홀비자소지 고용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체불된 일주일치의 임금을 달라며 오히려 협박(?)하고 있다고 이 여성독자는 울분을 토로했다.

이제서야 이들을 전적으로 믿고 일을 맡겼던 자신을 후회해보지만 이들에 대한 미운 감정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져 나머지 밀린 임금조차 주고싶은 마음이 솔직히 없다고 고백했다.

언뜻 보기에는 이 두 독자들의 이야기가 한 사람은 워홀비자 소지자들을 감싸는 것처럼, 또 다른 경우에는 이들을 비난하는 것 같은,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일맥상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과거에 유사한 피해사례를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은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방노하우가 생겼다는 것이고 후자는 최근에 겪은 일로 매우 실망하고 있다는 차이일 뿐 두 독자 모두 워홀비자소지 고용인 때문에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는 사실은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부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입는 다수가 생긴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몇몇 소수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이번 취재를 통해 느낀 솔직한 감정이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나 그들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사례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상호간의 불신은 더더욱 그 골의 깊이를 더해 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책임은 뒤로한 체 일방적 자기권리 주장만 일삼는 몇몇 소수의 왜곡된 현실인식 때문에 전체 사회 구성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 몫은 고스란히 우리모두의 것이 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으려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한인사회의 목소리는 그래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일까, 언론으로써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지말고 다양한 의견을 전달해 달라는 독자의 전화 당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이재훈 기자



마감 처리 중에 이메일로 제보가 들어왔다. '사건제보(광고문의)'라는 모호한 제목으로 들어온 이 메일을 읽고 이 내용이 한 교민 사이트에 떠도는 낯익은 제보라는 사실과 함께 이민을 미끼로 한 결혼사기가 너무 빈번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결혼 사기에 관한 이 사건의 전말은 고국의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해 만나게 된 호주 영주권을 소유한 남자가 결혼을 약속, 결혼 혼수 준비 비용으로 20만불을 받은 후 이를 들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다. 결혼을 통한 파렴치한 범죄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지만, 인터폴까지 동원된 복잡한 사건에 대해, 가해자 측과 접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보도했다가는 곤혹을 치르기 일쑤다 싶기도 해서, 바쁜 마음에 일단 접어두었다가 끝끝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결국 이번 주에 어떤 식으로라도 언급하고 싶었다.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해 소개받고, 성형 수술로 얼굴마저 바꾼 가해자가 가족을 동원해 확신을 가게 만들고, 무엇보다 기혼자임에도 불구하고 결혼 정보 회사를 이용해 미혼자로 둔갑했고, 가족들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수법 등 치밀한 수법으로 봐서 이런 류의 결혼 빙자 사기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째, 이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결혼 정보 회사의 신원조회 만을 믿었다'는 피해자의 통탄이 가슴에 남는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그 만큼 범죄도 세계화되고 진화한다. 몇 만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데, 몇 배의 주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는 가해자는 기혼자였다고 하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둘째, 결혼 전에 돈거래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호주 이자가 한국의 사채보다 비싸다며 돈을 요구"한 가해자의 요구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물론 결혼시 쌍방 간에 돈이 오고가고 하는 일은 일반적이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일방적인 돈 요구 만큼은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셋째, 냉정하게 보면 일종의 '국제 결혼' 아닌가? 모든 것을 더 신중히 관찰하고 주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결혼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 시대는 "돌다리도 두들겨 봐야 하는 시대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건 인생의 또 하나의 출발점을 두고 주의를 요구하는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서글프다.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도덕이라는 말이 우습게 들리는 시대다. 무엇이 그른지 옳은지 모르는 포스터 모던 시대의 한 중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사랑과 결혼’ 만은 침범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 주 10일 각각 시드니 내의 한 호텔에서의 기자 인터뷰에서 장점돌 할머니를 만났다.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8월 6일부터 아들레이드, 호바트, 멜번을 거쳐 시드니에 순회하는 강행군 하고 있었다. “이제 비행기라면 지긋지긋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주름살이 한 층 더 깊어 보였다. 자신을 포함한 일제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한 치욕의 역사에 대해 보상받고, 사과 받으려는 의지만큼 주름살도 깊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할머니는 피곤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포럼, 캠페인, 촛불 집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호주 4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이런 행사가 호주 땅에서 있은 지 채 몇 일이 지나기도 전 광복 61주년을 맞이하는 8월 15일 고이즈미는 주변국의 반대와 일본 국내의 절반에 이르는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이러한 일본 정치인들의 작태는 주변 국가의 국민들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킨다.

93년 일본 관방부 장관 고노 요해이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군이 관여한 점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우에다 기요시' 일본 사이타마현 지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안부는 있어도 종군위안부는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치인들의 주장은 10년이라는 시간의 거리 보다 더 멀어져 있다.‘동서고금’을 막론한다던 말 그대로 장 할머니를 만난 백인 위안부 피해자 얀 할머니는 “아직도 커튼을 닫을 때 마다 일본군 위안부 때의 기억이 전기충격처럼 살아난다.”고 증언했다 ‘동서’를 막론하는 피해자를 남겼으며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 악몽은 할머니들의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망언’과 ‘증언’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

정대협 윤미향간사는 멜번에서 가진 캠패인 중에 한 호주 학생이 장 할머니가 받은 고통에 대해 주변에 알리고 싶으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아서 잘 설명할 수가 없다고 말하자 “일본의 대동아 전쟁이 확대 지속되어 호주에 까지 일본이 침략했다면 너희 할머니가 일본군에 의해 피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설득해 보았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일본의 대동아 전쟁에 의해 호주가 공격 당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군은 파푸아 뉴기니까지 침략했었다. 사실 NSW 주의 Cowra에 일본군 포로 수용소도 있었다. 남 태평양 섬 각지에서 포로로 잡힌 일본군이 그곳에 수용되었다. 이들이 수용소 탈출을 시도 해 호주 군과 충돌했고 일본군 241명 호주군 4명이 사망했다. 현재 이 장소에는 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와인 제조장이 있으며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 건설되어 있다.

광복 이 후 61년이 지났지만 이 평화의 종소리는 아직 장 할머니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아직도 싸움을 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피해 사실을 숨긴 채 죽어갔고,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여성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난 15일 저녁 총영사관 관저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동포 간담회에서 이 캠페인 소식을 전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우리정부의 복안에 대해서 질문했다. 답변은 굳이 옮기지 않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도, 역사 교과서, 신사 참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주 엠네스티가 먼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초대하여 캠페인을 진행했다. “2010년 까지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호주 엠네스티 사라 한슨 영이 말했다. 한국정부와 한인사회가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준 것에 대해 고맙고 또 한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월 미국의 히스패닉들이 이민법 개정에 반발하여 전국적 시위에 나서자 미국사회는 히스패닉 파워에 흠찟 놀랐다. 이 시위는 미국 정계에 상당한 정치적 압력을 가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 얼마전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히스패닉 이민자 단체들은 이 날을 이민자 권리를 주장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필라델피아 지역의 미국 독립 축제에서 히스패닉 가수들은 미국 국가를 스페인어로 불렀다. “영어로만 주문하라”는 안내판을 내 건 시내 한 레스토랑에 항의하는 의미를 띠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스페인어라는 도구로 미국 사회의 멜팅 팟(melting pot)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과 호주의 다민족 문화는 지향점이 다르다고 한다. 미국의 멜팅 팟(melting pot) 정책은 모든 문화를 녹여내 미국의 색깔을 입힌다. “911때 성조기 안달면 안될거 같아서 하나 사서 차에 달고 다녔다.”라는 시애틀 교민의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호주의 문화는 이와 조금 다르다. 강요된 애국이라기 보다는 다문화 속에 하모니를 찾는 것이 호주 식이다. 즉 각기의 문화나 풍습을 지키도록 권장하되 각기 다른 문화들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것이 호주식 다문화주의다.

호주정부각료회의(COAG)에서 94년 ‘아시아권 언어와 호주 경제의 미래’ (Asian Languages and Australia's Economic Future)라는 보고서를 발행한 후, 비슷한 시기에 날사스(NALSAS) 아시아 언어교육 진흥책 전략을 수립한 것이 이를 보여 주는 호주의 다문화 하모니 정책의 예이다.

이 처럼 호주에서는 다문화의 상존이 가능하다. 이에 제도권 내에서의 한글 교육도 타 영어권 국가와 비교 타의추종을 불허했었다. 이민 1세대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한국어 교육에 나섬으로서 호주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미빛 통계는 최근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호주의 아시아 언어 교육은 한국어를 제외한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를 언어로 재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도권 내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말 한국 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호주 주류 사회 내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차치하고 보더라도 교민 2세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드니 총영사관이 작성한 한글 교육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참조하면 1994년 통계와 비교 2006년 보고서의 학교 수, 학생 수는 절대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다. 그러나 교역량의 증가와 이민자 수의 증가를 감안해 볼 때 상대적으로 한국어 교육의 발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주 시드니 내 모 교회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어로 대화하면서 몇몇 처음 뵙는 분들에게 인사를 나누었다. 청년회 회원들이라고 하셨다. 밖으로 나오다가 또 하나의 청년회 그룹을 만났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른 그룹의 청년들이었다. 한 교회의 청년회지만 규모가 큰 교회에서는 응당 일어나는 2개의 청년회 문제는 이민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글 협회의 정낙흥 회장은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초기 이민 사회에서는 한글 교육의 필요성 자체가 논제였다. 이민 초기 영어로 고통 받던 세대들이 한국어 교육이 자녀들의 영어 교육에 해가 되지 않겠느냐 생각해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자녀들이 생겨났다.”고 회고했다.

생활 수준이 향상된 현재의 시점에서 '호주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문제다', '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도 문제다.'는 식의 편가르기는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에 우스운 논쟁이다. 다중언어의 시대가 왔고 호주 정부에서도 2, 3개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재가 자랑거리라고 언급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어 교육이 영어에 방해된다는 생각은 이제 올드패션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국어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한국어 학습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장기적 대안이다. 단기적으로는 한국 교포들을 대상으로 자녀들의 한국어 학습의 중요성을 학부모에게 적극 홍보하고,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한국어 교육의 장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이민사회 내에서의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한국어는 다민족 호주 문화 속에 한국 문화를 유지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동인 기자





지난 10일 2006 독일 월드컵이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2002년 영광 재현을 목표로한 한국 팀과 포스트 코리아를 꿈꾸며 거스 히딩크를 영입한 호주는 조별리그에서 나란히 1승 1무 1패를 기록했고 각각 조별리그 순위 한국17위 와 호주 16위를 기록함으로서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아쉬움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두 팀의 행보에 공통점이 많아 흥미를 끈다.우선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게임에서 각각 한국은 토고에 2대 1, 호주는 일본에 3대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는 점 결승 진출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상대로 호락호락 하지 않는 상대임을 보여줘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더욱이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대해 씁쓸한 뒷 맛을 남겼다는 점 또한 공통점이다. 한국은 스위스전 오프사이드 판정, 호주는 이탈리아전 연장 직전 페널티킥 판정이 아직도 축구 팬들의 기억에 남아 스포츠에서는 금물이라는 가정법 문장을 몇번이고 만들게 했다.

한인들의 응원 열기도 뜨거워 찬 새벽밤 프랑스 전에도 3천의 인파가 센트럴 역 근처 벨모어 파크에 모였고 SBS의 스위스 한국 전의 방송 편성표를 바꿔 한인 커뮤니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우려스러운 유학생의 추락사고 소식도 들리기도 했다. 호주는 이번 16강을 계기로 2014년 월드컵 유치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고 NSW 주의 축구 선수 등록자 수가 급증하는 등 축구의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러나 히딩크의 마지막 충고도 어김없이 두 나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강한 자국 리그 없는 8강은 불가능 하다.” 자국 리그의 성장이 숙제로 지적되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은 호주가 아시아 지역에 배정되어 한국과 호주는 월드컵 본선 티켓을 겨루게 될 전망이다.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국가들의 저조한 성적을 감안하면 티켓은 현재보다 줄어들 것을 예상할 때 한국과 호주는 가까운 미래에 만날 수 있는 상대다.

이를 위해서는 자국리그의 활성화는 한국 축구와 호주 축구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할 수 있다. 히딩크가 인터뷰에서 네덜란드리그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자국리그의 강화를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이어 스웨덴 스트라이크 '라르손'의 영입을 수원 구단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스타선수 영입을 통한 K리그의 흥행 성공을 예고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과 인프라의 대폭 향상에도 불구하고 K리그 흥행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한것도 사실이다.

호주도 '사커'의 인기를 어떻게 이어 갈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스포츠 선진국 호주에서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구에 대한 투자는 '사커루'로 한정되었고 A리그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커루 선수들의 대거 은퇴 사실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자국리그의 성장과 축구에 대한 관심의 지속으로 한국과 호주는 서로 두려운 상대로 아시아 예선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축구는 4년 마다 있는 '선거' 같은 '월드컵'이 아니다. 꾸준한 투자와 지속적인 관심이 축구 발전에 원동력이다.




이동인 기자
지난 토요일 ‘캠시음식축제’가 열린 캠시 지역은 하루종일 왕래하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축제의 본거지인 안작몰 인근의 거리는 각양각색의 인종들로 붐벼 정말 다문화 도시의 전형을 눈으로 실감하는 듯 했다. 도로 양쪽을 가로막고 설치된 가판대 행렬에는 타국의 이색적인 맛을 느껴보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 공연무대 앞에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감상하려는 관객들로 운집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캔터배리 카운슬의 홍보 전단을 보면 ‘캠시음식축제, 시드니의 서울’이란 명칭이 사용됐다. 공연 순서에도 한국의 부채춤과 북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드니의 서울에 ‘한국인’이 없었다. 노상에 설치된 수십개의 가판대 중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은 5개에 불과했고 거리의 행인들도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99년 ‘시드니 관광의 달’의 일환으로 지역 특색에 맞는 축제를 장려한 NSW 정부의 정책방침에 따라 캠시상우회가 주축이 되어 ‘한국음식축제’는 첫 발을 내디뎠다. 소수민족 음식축제의 기치아래 처음 열린 ‘한국음식축제’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2003년까지 대표적인 교민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첫 해에 8천 여명의 주민이 참여했던 행사는 개명되기 직전인 2003년에 ‘Korea Week’로 지정, 기간을 3일로 연장하며 2만 여명이 다녀감으로써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전세계에 선양할 성공적인 행사로 정착되는 듯 했다. 가판대는 한국인 일색이었으며 거리는 정말 ‘시드니의 서울’로 손색이 없었다.

고객의 발길을 붙잡는 음식, 음식을 사가는 고객과 판매하는 상인, 행사를 진행하는 요원 등 축제의 중심에 한국문화와 한국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먼 타국에서 한민족의 숨결을 느끼고 문화의 향기를 곳곳에 전파한다는 자긍심 속에 우리는 하나가 되었고 행사에 참가하는 모든 교민 개개인이 홍보사절 역할을 했다. 이민 1세대들은 호주 방방곡곡에서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날아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5년간만 지속된 한국음식축제였지만 ‘한국’이란 이름아래 백의민족의 일체감을 확인했고 고향의 인심을 맛볼 수 있었으며 한 핏줄의 의미를 되새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세계 여러 민족의, 국가의 음식을 한 곳에서 구경하고 맛보는 흥겨운 행사인 캠시음식축제에는 그런 ‘한국적’ 요소들이 모두 상실되어 버렸다. 어디를 눈씻고 찾아봐도 한국인의 자부심을 내세울 만한 ‘우리 것’이 없는 듯 했다. 한국과 캠시라는 단어 하나 차이에 한인들은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시의회에서 제정한 ‘한국음식축제’를 시의회의 정식 인준절차도 없이 행정적으로 개명한 로버트 푸롤로 캔터배리 시장은 “60여 민족이 살아가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명칭 변경”의 명분을 내세우며 “행사의 주체는 한인사회”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개칭 후 동포사회의 관심과 참여가 완전히 실종된 상태에서 그의 ‘말뿐인 한인 배려’는 너무나 공허하게 들린다.

이날 가판대를 설치한 교민들은 다같이 “어떻게 된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음식축제’란 명칭이 없어진 것은 너무 아쉽다”며 “교민들이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소와 시기와 가판대는 동일하건만 가판대의 주인과 모여드는 고객과 구경하는 행인들은 낯선 얼굴로 가득찬 행사장. 활기찬 주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쓸쓸한 주변인으로 만 남게된 한인들.

돈 주고 살 수 없는 교민 화합의 장이자 한국 문화의 상징인 알토란 같은 ‘한국음식축제’가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잃어버린 소중한 이름을 되찾아 한국문화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한번 재현해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권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