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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법률칼럼'75

  1. 2011/06/30 안녕…
  2. 2011/06/23 하늘의 명을 기다리다…
  3. 2011/06/16 별…
  4. 2011/06/09 배려…
  5. 2011/05/13 그런 법이….
  6. 2011/05/06 ‘The’ News Agency in Epping…
  7. 2011/04/29 Natasha Case…
  8. 2011/04/21 부활…
  9. 2011/04/14 사랑과 결혼…
  10. 2011/04/08 두려움…
  11. 2011/04/01 회초리…
  12. 2011/03/25 벌써 일년…
  13. 2011/03/18 DEFINITELY...
  14. 2011/03/11 상처...
  15. 2011/02/24 한국인...
 

안녕…

칼럼/법률칼럼 | 2011/06/30 09:37 |

새벽 2시, 아직도 잠들지 않은 이 도시의 한켠에는 이른 아침을 준비하며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틈에는 새벽 비행기로 먼 법정에 가야 하는 변호사도 있었고….

오후 2시, 이민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조그마한 소도시의 아담한 법정. 단아한 여성 판사님은 안경 너머로 먼길 달려온 동양인 변호사를 인자하게 맞아주셨다. 오늘 아침 경찰의 새로운 증거가 제출 되었는데 받아보았냐는 것이다. 50 장이 넘는 사진은 피해자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커다란 돌덩이를 가슴에 올려놓은 느낌이었다.  신문 기자 2명이 맨 뒷편에 앉아있었으며, 남자 기자들은 출입이 통제가 되었다.

2시간이 지난후 피의자는 울고 있었고, 참석한 가족들도 울었다. 온몸의 힘이 빠지고 목이 따가워 온다. 새벽에 비를 맞고 다녔는데 긴장이 풀리니 감기부터 오려고 했다. 판사님은 석방을 명령했다.

밖으로 나오면서 회사 관계자분의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변호사님, 영화에서 보던 것과 똑 같은데요..”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사실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호주인 변호사를 고용할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사실 이 회사의 고문 변호사가 몇명 있었다. 하지만 형사사건을 맡아보지 않았기에 다른 주변의 변호사를 추천했으며 회사 대표는 많이 흔렸다고 실토했다.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수없이 고민을 했다고 한다.하지만 마지막까지 믿고 따라와 주었으며,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이 행복감…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후배들의 축하 메세지가 날아오고 지인들의 축하로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지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에서야 알았다. 이렇게 철저하게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회사 관계자분들이 마련한 숙소에는 단 한번만 사용할 물건들을 모두 새 것으로 구입하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동료를 구한데 대한 감사함의 표시이리라.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시드니로 돌아왔다.

사실은 오늘이 이 칼럼의 마지막임을 시작할 때 부터 알리고 그동안 아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식의 인사로 시작해야 함에도 구구절절한 인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을 알면서도 애쓰 감추려 하지 않았다.

아니 글을 쓴다는것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고 현학적인 체를 해도 자신의 심상(心象)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전달이 된다. 무엇으로 이 부족함을 가리겠는가 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또 다시 찾아뵙는 날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때에는 좀더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빈다. 아직 채 숙성되지 않은 많은 기운들이 마음과 몸을 들떠게 하고 그 기운으로 젊음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러한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아직 채 갚지 못한 마음의 빚을 고스란히 남기고 가지만 언젠가는 그 빚들을 다 갚는 날이 있을 것이다.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고 하늘은 여전히 푸르른 그런 날에 그 밝은 웃음을 짓는 날이 올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려 하는 삶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모두에게….

El Khan Legal
Tel: 9264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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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가본 Cairns는 해변 도시였다. 유명한 산호초가 있다고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바다를 바라본 것이 전부일 만큼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대기한 차량에는 점심이 준비되어 있었고, 달리는 차안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피의자의 회사 관계자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시 1시간 반을 더 달려야 피의자가 구금되어 있는 경찰서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사건은 지역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큰 글씨로 보도가 되었고 회사 관계자 분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역력했다. 비관적인 정도가 아니라 이미 유죄 확정 판결이 난 것마냥 체념을 한 상태였다.

사건 현장을 촬영한 기자들에게 판사는 사건 관련 사진들은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는 강력한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지역사회에 끼칠수 있는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판단이 되지만, 그것 보다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법원 앞 마당이라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통역을 구하지 못한 판사님은 인근 도시에서 통역사가 도착할때 까지 재판을 하루 연기하셨다.

경찰 구치소에서 만난 피의자는 울고 있었다. 자신이 한 행위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며 살려달라고 했다. 사건 당일 부터 거의 5일 간 씻지도 못한 상태였고 좁은 틈으로 견디기 힘든 냄새가 베어 나왔다. 첫눈에도 선량하게 보이는 20 후반의 젊은이였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배우자와 함께 호주에 정착을 준비중이었다.

기억을 못한다고 했지만 피의자는 혐의 사실 대부분을 시인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경찰서에 가본 적이 없는 피의자가 어떻게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는 회사 내에서도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었다.

피의자는 3건의 폭행으로 기소가 되어있었고, 2건의 혐의는 중범죄에 해당될 만큼 사안이 심각했다. 다시 말하면 유죄 확정 판결이 날 경우 징역형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보면 된다. 경찰의 자세는 느긋했고, 그만큼 자신들이 범죄를 증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Cairns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당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판사에게 긴급한 명령을 신청할 것이라고 했고, 곧이어 판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피의자의 신체를 촬영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대한 반대 이유가 있으면 말하라고 한다.

작은 소도시라 경찰과 판사의 협조체제가 기가 막혔다. 어쨌거나 피의자의 몸에 있는 상처가 이 사건과는 무관하며 범죄 사실을 증명하는 경찰에게도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판사는 이미 결정을 한 상태이고 자신의 결정이 법 조항에 근거한 것이라며 해당 법 조항까지 읽어주는 것이었다. 무엇이라 하겠는가?

점점 옥죄어 오는 이 압박감을 피의자와 함께 나누기에는 버겁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과연 판사님에게 무엇이라 이야기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Cairns는 아직 여름 날씨라고 할 만큼 기온이 높았고 비행기로 3시간을 이동했다는 것은 꽤나 먼거리를 여행한 것이었다. 멀리 바다 북쪽으로는 아찔한 수평선이었다. 아직까지 피의자의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이 받을 충격을 염려해서 회사측에서는 사건 내용을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벌써 재판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이 압박감을 피의자는 무슨 마음가짐으로 견디고 있을까?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마도 피의자는 구치소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말을 수천번도 더 하면서…

담당 경찰과의 마지막 전화 통화를 하면서 모든 한국 교민들이 이 사건을 주시 하고 있으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구명운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행운을 빈다는 묘한 인사를 남겼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던가?

El Khan Legal
Tel: 9264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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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칼럼/법률칼럼 | 2011/06/16 11:07 |

휴일에 걸려오는 낯선 번호는 받기도 전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하지만, 십중팔구 급박한 일이며 대부분은 형사사건이다. 이는 크고 작은 일들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아찔한 순간이다.

상습적인 범죄자들이 형사사건의 주인공인 되는 경우는 비율상 그리 높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민자들의 유입이 늘어나고 있는 호주의 법체계에서는, 법에 대한 지식이나 문화의 차이에 의해 억울하게 법정에서 두손 두발을 비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찰들 역시나 이러한 이민자들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뼛속까지 타락한 범죄자들이나,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억울한 사람들이나 형사사건 피의자일 뿐이다. 법(法)이라는 것에 눈이 있고, 귀가 있었다면 아직까지 변호사들이 해야할 일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달콤한 것에 비한다면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있을까' 싶은 이 연휴의 아침을 사정없이 깨어버리는 한통의 전화는 아직 반도 채 지나지 않은 꿈같은 연휴를 즉각 중지시켜버리고 말았다.

호주라는 땅에 산지도 꽤 된다 싶었는데, 실지로 이 대륙이 왜 대륙으로 불리는지 실감을 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동안 날아도 '아직도 호주 대륙위를 날고 있다'는 몇 년에 한번 할까말까하는 그 식상한 기억 외에는...

시드니가 아니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도시 이름을 언급하며 그곳에 자신의 지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담당 경찰의 얘기로는 형사사건으로 긴급 체포된 고객의 구속 적부심에서 피의자가 하는 얘기를 알아 들을 수도 없고, 재판 진행과정을 전달 할 수도 없었던 판사님은 인근 도시에 한국인 통역을 요청하고 재판을 하루 연기하였다.

그러고도 통역이 제때에 도달하지 않아서 피의자는 다시금 오후에 법정 출두를 명령받고 대기중인 상태였다. 담당 경찰이 하는 얘기로는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3000 km가 떨어진 곳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나 먼 거리인지 도통 분간할 수 없었고, 비행기로 3시간을 타고 가서, 다시 1시간 반을 차를 타고 이동해야 담당 경찰서에서 피의자를 면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시간 면회를 위해서 거의 10시간을 하늘을 날고 땅을 달려서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먼 이국땅에서, 밤낮이 구분도 되지 않는 경찰 구치소, 담당 변호사 외에는 가족과의 면회도 통제되는 절대 격리의 구역. 피의자의 얼굴 빛은 납과 같이 되어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회한(悔恨)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흐려지는 자신의 미래, 고객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애써 침착하려 하지만 결국 예상되는 재판 결과를 힘없이 물어보며 가늘어지는 목소리…

당장이라도 날아가서 그의 손을 잡아주고 위로를 해주고 싶다. 당신이 잘못한 것이라고는 영어라는 언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것과 이 대륙의 법에 대한 지식이 약간 부족했을 뿐이라고.

이름도 낯선 한 도시의 차가운 경찰 구치소에 성실한 한국의 젊은이가 하얀 밤을 새고 있을 것이다. 몇일 간 잃어버린 그의 잠을 찾아주고 와야 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의 죄목이 무엇인지, 피해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인생이라는 긴 강을 건너면서, 아무런 상채기 없는 손과 얼굴을 지니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심일 것이다. 그렇게 근심 걱정 없는 삶을 누구인들 동경하지 않을까 싶지만 세상살이가 그리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러한 상처가 남에게 내세울 만큼 대단한 훈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의 가슴을 쥐어 뜯어면서 까지 괴로워할 것 까지도 없다.

내 마음의 평화로움을 찾을 수만 있다면 나의 이름이 어떻게 불리어지든 나의 하루는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별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이라도 있는 곳이었으면….

El Khan Legal
Tel: 9264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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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칼럼/법률칼럼 | 2011/06/09 11:49 |

재판을 앞둔 피의자들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심한 압박감에 시달린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고, 거의 식음을 전폐하는 분들도 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절박한 마음에 주위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가 솔깃해 지기도 한다. 어찌할 방도가 없다.

얼마전 최종 재판을 하루 앞둔 한 고객이 아침 일찍 사무실 문을 들어섰다. 최췌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퀭한 눈으로 일어나자 마자 한 달음에 온 것 같았다. 자신의 사건 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에 사건에 대한 문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사건번호를 알려달라고 할 이유는 없다. 그것도 재판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는 더더욱 변호사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다. 무슨 연유로 그러한지 물었고, 자신의 지인이 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현재 일하는 변호사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자신의 사건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맥이 탁하니 풀리고, 지금까지 죄어오던 긴장감이 배신감으로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상해폭행으로 기소된 고객은 전과 기록을 남기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느 누구인들 전과자라는 영원한 낙인을 좋아할리 없지만, 이 젊은이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재판을 하루 앞둔 시점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던 것이다. 반드시 지켜주고 싶었던 아름다운 청년이었기에, 실망감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 혼란스러운 순간에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게 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하나로 포개었다.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서 더 나은 결과를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건 파일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의자의 인생이지, 변호사의 영리나 자존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깨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일치 시키는 순간 서로의 눈에서 반짝하는 신뢰가 새로 생겨난 것이다. 둘이 하나가 되어 최선을 다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했다. 그 다음에는 하늘에 맡겨야 하지 않겠냐면서 그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24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혹시라도 긴급한 연락이 올까해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희생은 대수롭지 않게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재판이 열리는 아침까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법원으로 향하면서 그는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으므로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재판을 마치고 마음 편하게 이 길을 걸어올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걸어갔다.

그렇게 기적은 일어나고 결국 고객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법원을 나설 수 있었다. 지난 6개월을 짓눌러왔던 그 압박감에서 비로소 해방이 되는 순간이었으며 온 몸의 맥이 풀려 걷기도 힘들었다.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온다. 그의 맑은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돈을 많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지금은 많은 돈이 없지만 직업을 갖게되고 돈을 벌게 되면, 자신이 번 돈의 10%를 주겠다고 했다. 십일조를 내어야 할 텐데, 다시 10%를 변호사에게 주고 나면 별로 남지도 않을 텐데 괜찮은지 물었다. 좀 많은 듯 하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을 보면서 표현하기 힘든 행복감을 느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도 남을 젊은이였다. 저러한 사람과 일을 해보았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의 눈빛을 보면서 그가 저지른 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확신을 했으며 지난 6개월동안 단 한번도 그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진정한 배려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해준 그에게 감사한다…
 
El Khan Legal
Tel: 9264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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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법이….

칼럼/법률칼럼 | 2011/05/13 10:45 |

운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속이나 다른 법규를 위반했다는 통지를 받고 벌금을 내라는 통지를 받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명의로 된 차를 운전했다는 것인데, 보통은 가족이나 지인들일 것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실수로 벌금을 지불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벌이진다.

물론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다면 RTA의 결정에 항소를 할 수 있다. 즉, RTA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항소심을 할 수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재판에 참석해서 자신이 차를 운전하지 않았고, 당시 차량을 운전한 사람의 인전사항을 전해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어쩌랴! 진실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제 모양과 색깔을 보일 수 있었다면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인간의 삶에서 아마 재판이라는 과정이 이토록 복잡하게 발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연 법정이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곳이 맞기는 한 걸까?

그렇게 사건 당일 운전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고 제삼의 누군가이므로 자신에게 부과된 RTA의 운전면허 정지는 부당하다고 열변을 토한다. 제삼의 누군가가 직접 진술서에 자신이 운전을 했다는 것을 시인한 증거도 있기 때문에, 판사님이 아니라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억누를 수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말이다. 이런 부당한 결정을 한 RTA를 판사님이 혼내주고, 자신에게 부과된 억울한 운전면허 정지와 벌점을 거두어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을 것이다. 그런가?

자신이 운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보다, 사건 당시에 자신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어야 항소심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제 삼의 증인이 직접 운전 했다는 진술서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어쨌거나 성공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면 항소심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으며 운전면허 정지 고지서의 효력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RTA 결정에 대한 항소심을 이긴 것은 분명히 맞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시 RTA 결정과 RTA 결정이 아닌 것이 있다. 다시 말하면, 벌금이 부과되어 운전면허를 정지시킨다는 것에 있어서, RTA의 Commissioner가 결정한 것은 운전 면허를 정지시킨다는 것이지, 벌점을 부과한 것은 RTA의 Commissioner 결정이 아니다. 그것은 도로교통법상의 규정이며, 해당 차량은 분명히 법규를 위반을 한 것이 CCTV에 정확하게 기록이 되었고, 그래서 벌점이 합법적으로 부과된 것이다.

그래서 항소심을 이긴다 한들, RTA의 운전면허 정지 결정만 번복이 되어 운전을 계속 할 수 있을 뿐이며, 그 지긋지긋한 벌점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즉 벌점이 초과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운전면허가 정지가 되지 않고,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이야 뻔하지 않은가? 단 1점이라도 벌점이 발생하는 경우, 이제껏 침묵을 지키던 초과 벌점 망령이 되살아나서 당장 면허 정지 고지서가 날아온다. 하면 다시 RTA의 결정에 항소를 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이미 밝혔듯이, RTA Commissioner 가 내린 결정이라고는 벌점이 초과되어 면허정지를 한다는 것이 전부이며, 벌점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그런 법이 어디있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런 ‘법’도 있는 것이다. 2010년 12월 까지 존재하던 ‘그런 법’이 지금은 개정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가을인가 싶었는데 아침 바람이 매섭다. 한국의 겨울 같지야 안지만 그래도 겨울이라고 긴옷을 입게 만든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어두워지면 쉴 곳을 찾아가야 하리라…그것이 이치이며 자연의 법이다. 저 수많은 ‘법’중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과연 몇이나 될까?

El Khan Legal
Tel: 9264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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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Epping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며 평화롭던 지역사회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게 된다. 음주나 다른 폭력 사건에서 비롯한 우발적인 살인 사건과는 달리 지역사회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일가족이 몽둥이로 맞아서 살해된 것이다.

Mr Lin 씨 내외와 의 두 아들, 그리고 이모가 집안에서 몽둥이로 살해되었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딸은 학교에서 단체 여행을 가는 바람에 비극을 면할 수 있었다.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다행일지는 모르나, 어린 소녀가 그 충격을 어떻게 견디어 나갈 것인지 염려스러웠다.

기차역에서 가까운곳에서 조그마한 Newsagency를 성실히 운영하던 Lin 씨 일가족의 참혹한 살인사건은 범죄율이 낮은 Epping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경찰에서도 NSW주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살인사건의 하나라고 밝혔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우발적인 살인사건 이라고 보기에는 사건의 살해 방법이 너무 잔인 했다.

이제 막 9살과 12살이었던 두 어린이가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되었고, 사건이 발생한 직후 부터 상당한 기간동안 Newsagency앞에는 애도의 꽃들이 놓여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죽음을 아파했을까?

그길을 지날때 마다 수북히 쌓여있는 꽃들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 졌었다. 평화롭던 그 길이 그렇게 어두워 보이고 싸늘 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기억하기 싫은 그의 가족의 죽음은 경찰에게는 하나의 숙제였으며, 상당 기간동안 경찰에서는 용의자나 범인에 대한 발표가 없었다. 혹시나 미제사건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2년간의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서 경찰은 Epping 지역에 사는 한 남성을 Lin씨 일가족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했다.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곧 살인사건으로 기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평화스러웠던 거리의 조그마한 Newsagency를 운영하던 평범한 일가족을 차마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살해하게 되었는지 곧 모든 것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홀로 남아서 이번 사건의 재판 결과를 지켜보게 될 유일한 생존자인 소녀에게는 다시 한번 아픔을 떠올려야 할 지도 모른다.

어떠한 이유로 살해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범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말도, 그 어떠한 논리도 이들의 죽음을 위로하지는 못할 것이며, 어린 소녀와 한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받은 그 충격과 상처를 달래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의 가족들은 살해 된 이유 만이라도 알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실수라면, 그래서 원한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인간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사죄를 한다면, 이 어린 소녀가 범인을 용서 할 수 있을까?

권위와 위엄의 상징인 법원에서 과연 어떠한 판결로서 이 가족들의 죽음을 위로 할 것이며, 어린 소녀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 할 수 있을 런지..

과연 어떠한 처벌이 있어야 공평한 법 집행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자신의 목숨으로 용서를 바란다고 용서가 될 수 있을까?

모국에서5월 5일은 어린이 날이다. 싱그러운 봄날에 마냥 싱그럽기만한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날을 제정한 것이리라.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무엇이 옳고 그릇된 것인지를 가르쳐 줘야 하고, 그래야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Lin 씨의 두 아이들도 아버지의 성실함과 어머니의 상냥함으로 누구보다도 밝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건만 없었더라면…
이제라도 지면을 통해 2009년 7월에 사망한 Lin씨 일가족의 명복을 빌뿐이다.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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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asha Case…

칼럼/법률칼럼 | 2011/04/29 10:27 |

훌륭한 제자를 만나 가르친다는 것은 군자삼락(君子三樂)의 하나이다. 하지만 세상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군자삼락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초연히 자신의 길을 감으로써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졸업을 앞둔 연수기간 중에 일생일대의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가까운 듯 경외로웠고, 어려운 듯 허물이 없었던 그는 연수원 최고 책임자였다. 특별한 것도 없었던 한 동양인 법대생을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미소를 감추지 못했고,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그렇게 해맑게 바라보았다.

수많은 학생들 속에서 별로 유별나지도 않은 학생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던 책임자는 줄곧 이 학생을 자신의 곁에 두려고 했다. 중간 평가가 있기 이전에 그는 다른 감독관들과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장 뛰어난 연수생 중의 하나라고 칭찬을 한다. 반론을 제기 할 듯한 다른 감독관들도 최고 책임자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 하자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당연히 중간 평가에서 상위 점수를 받았다.

연수시절이지만 실제 사건이 주어지고 재판을 잡는 등, 보조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상당한 주의를 필요로 했다. 그 많은 연수생 중에서 유독 한 사람에게만 임무를 주고, 지시하고, 보고를 받으면서, 다른 연수생들의 질투는 숨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세상 전부를 적으로 삼아도 아무렇지도 않았으며, 그의 관심만으로도 온 세상은 훈훈한 장미빛이었다. 실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의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책임자는 정부 기관의 요직에 발탁이 되어 급하게 전출 명령이 났다고 했고, 작별다운 작별도 하지 못한 채 후임자에게 자리를 맡기고 그는 떠났다. 짧은 인사라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해 화장실에서 실제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면 믿겠는가?

이별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전임자로부터 서러운 대접을 받던 콩쥐들의 반란은 계모가 떠난 다음부터 제대로 격식을 갖추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진행하던 사건들이 하나 둘씩, 다른 연수생에게로 넘어가고, 결국 별볼일 없는 사건만 한 두개 떠 안게 된 것이다. 그것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런 사건들로…

새로운 책임자의 자세는 상당히 고압적이었다. 특히 전임자의 황태자였던 동양인 연수생에게는 냉기가 흐를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재판 날짜를 연기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에 대해서 사건 파일을 자신의 집무실 바닥에 팽개쳐버렸고,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은 정리하고 있는 몰락한 왕자의 모습을 나머지 연수생들이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영욕(榮辱)의 세월이라는 표현이 제대로 어울리는 상황 아닌가? 몇 번의 내부 조정을 거쳐 결국 새로운 책임자로부터 정식으로 사과를 받아내었고,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그와 어색한 미소로 작별을 했다. 그렇게 연수기간은 끝이 났다.

그를 다시 만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항상 마음속에 그의 이름을 품고 있었다. 한동안 있고 있었던 그 이름이 불현듯 생각이 났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지척에 있었다. 정말로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며 그는 Human Rights and Equal Opportunity Commission (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면서 아이마냥 기뻐했고 마음이 설레었다. 그렇게 아껴주었던 제자로서 스승을 부끄럽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가 앞섰고, 역시나 그는 자신이 걷고자 하는 길을 한치의 흔들림 없이 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겨우 이어가는 고단한 삶 속에서 바라보는 그는 그때보다 휠씬 더 커 보였다. 그의 이름은 Natasha Case이다.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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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칼럼/법률칼럼 | 2011/04/21 15:33 |

가을 소풍을 하루 앞둔 아이들은 꿈속에서 벌써 하늘을 날은다. 다음 날 아침, 참기름 옷을 입은 김밥을 보는 순간부터 해질 녘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 까지의 시간은 그냥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이 된다. 보물찾기를 어떻게 했는지, 누구 김밥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히 소풍을 갔다 온 것이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개업식을 한다고 고사를 지낸 지 1년이 지났다. 시큼한 막걸리를 잔뜩 쌓아 놓았던 기억이 나고, 어디서 났는지는 몰라도 웃음을 머금은 돼지머리도 상위에 있었다. 그 자리를 축하해 주러 왔던 사람들의 얼굴들도 하나 둘 스치듯 지나간다. 천천히 마음의 빚을 갚으리라 마음먹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빚만 늘어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해준 그 따스함으로 지난 1년을 버티어 온 것만은 분명하리라.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365일이 되는 날을 하루 하루 세고 있었다. 무엇인가 이루었다는 성취감 같은 것을 기대 하면서 혼자만의 잔치를 준비하고,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던 그 365가지의 시간의 색깔도 한번쯤 음미하면서 말이다. 하루 종일 하늘을 바라보았고,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으로 오후는 포근했고 아늑했다. 여름인듯 가을인듯 따스한 햇볕을 안고 공원을 걸어보기도 했고, 이른 저녁에 기차를 타고 평범한 퇴근을 했다. 천천히 뒤돌아보는 그 시간들에서 웃음도, 아픔도 아직은 살아 있는 듯 느껴졌고, 무엇이 그렇게 절실했으며, 무엇이 그토록 가슴저리게 했는지는 몰라도 덧없다는 생각마져도 드는 것이 시간이다.

퍼즐 한조각 가까스로 맞춘것 같은 느낌이지만 뒷맛이 그리 개운치 않다. 수 많은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또 했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그 약속을 또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언제쯤이나 그 질긴 끈을 끊어 버릴 수 있을까? 갈수록 가파르게 느껴지는 이 인생의 고갯길에 내리막길이라는 것도 가끔씩 있어야 하고... 그리해서 굳이 힘겹게 내딛지 않아도 한번쯤은 바람에 실려서라도 가벼운 걺음으로 걸어가고 그래야 살맛도 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애시당초 내리막 같은 것은 없는 우리의 인생이었고, 그래서 그 하나의 사실을 깨우치지 못해 이토록 무거운 바위를 그렇게 밀고 또 밀고 가야만 되는 것인지? 도대체 이 육중한 바위를 당기는 힘이 언제쯤 한 풀 꺽여서 막걸리 한사발 들이킬 시간이 올 것인지…

쿠바의 피텔 카스트로가 드디어 권좌에서 물러난다. 지난 몇 십년간을 흔들림 없이 지겨온 최고 통치권을 자신의 동생에게 넘기고 자신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양이다. 현대사의 이념 분쟁에서 한 축을 담당했고, 공산주의 체제 실현의 꿈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는 쿠바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것으로도 대단한 이슈가 되는 모양이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변화와 개혁을 주창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원하는 것이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새로운 부활을 위한 것이라니 흥미롭다. 쓰러져 가는 공산주의의 이념도 부활을 꿈꾸고, 80세가 지난 새로운 지도자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사람들도 있다. 약속의 약속을 하더라도 믿고 따라가야 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는 것 아닌가?

또다른 일년을 앞두고 가슴 부푼 계획을 말하고 싶지만 이제 더 이상의 마음의 빚을 지고 싶지는 않다. 바램대로 되지야 않겠지만 최소한 고개를 떨구어서야 되겠나?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는 조그마한 힘이 있다면 그래도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한번도 죽지 않았으니까…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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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상 Gillard가 행사차 Luna Park에 도착하려다 동성 결혼 지지자들과 조우할 뻔했다. 이들이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안 수상은 정문으로 진입을 한다. 수상은 굳이 이들과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50여명의 동성결혼 지지자들은 그렇게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수상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는 것으로도 자신들은 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회피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평등’을 원한다고 했다.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결혼이라는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벗어나 있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평등이라면, 이들은 평등의 개념을 새로 공부해야 한다. 자신들이 동성애자가 되려고 하고, 동성 결혼을 하는 것을 사회에서 똑같은 결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을 자유롭게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인, 문화적인 재제가 바로 차별이다.

즉, 동성애를 불법이라고 규정해서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동성 배우자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것 자체가 범죄라고 하는 것이 차별이다.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동성을 사랑하고 같이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데, 그 사랑을, 그 결혼을 사회가 인정을 하든 안하든, 그것은 자신들의 사랑에 있어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한다. 즉 차이라는 것을 차별이라고 하면, 평등이라는 것과 동류(同類)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질서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차량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다른 것이다. 어느날 차량이 다니는 길을 건너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그 길을 건너고 말았다. 물론 다치지는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충동을 가진 사람들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과 같이 특이한 충동을 가진 사람들은 차량이 다니는 길을 마음대로 건널수 있게 달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자신들이 가진 충동은 진실되고 솔직한 것이고,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내면의 욕구이므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법적인 조치를 해주지 않는 것이 차별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평등’일 뿐이고,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수상이 야속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말해주고 싶은가?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일률적일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사회에 해로움을 끼치지 않는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가 공동체 사회의 유지 발전에 이로운 것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동성애가 해로운 것이 아니다. 동성 결혼이 왜 반대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제껏 지켜온 하나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고, 새로움을 인정해야 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이리라.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수의 동의가 획득되어지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과 선택 그 이상의 것이다. 이혼을 하지 않았는다는 것이 행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극단의 인내심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녀들을 위해 희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가정이라는 것은 하나의 조그마한 사회이고 우주이다. 그곳에는 질서가 있고, 이해심이 있고, 배려가 있으며, 존경도 있다. 따스함이 있고, 꿈이 있으며, 소박한 계획이 있다. 그래서 탄생의 축복이 있으며, 이별의 아픔도 있다.

남자 나이 40을 불혹(不惑)이라고 한다. 왜 여자 나이 40도 불혹이라고 하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성(性) 차별임에도 아직까지 별다른 논란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미혹되지 않는 나이에 이르고, 하늘의 명을 알 나이에 이르러서도 가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결혼을 해야할 적령기는 언제일까? 어떤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는 나이가 60이다.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류가 결혼을 해야 할 적령기는 60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즉 어떤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가정을 평화롭게 이룰 수 있를 것이니까.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만 인류의 사실상의 결혼 적령기는 60세였다. 성욕(性慾)을 주체 못한 터무니 없는 조혼으로 인한 부작용을 인류가 앓았던 것이었을 뿐…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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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칼럼/법률칼럼 | 2011/04/08 10:28 |

일전에 건축 공사를 마무리 하지 않은 건축업자 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시정 명령을 받았고, 개건축 견적까지 나온 상태에서 건축업자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자신이 청구해야 할 금액이 더 있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관련 기관에서는 개건축을 하라는 경고장을 발부하였고, 건축업자는 추가비용을 지불하라고 하니, 어쩔수 없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1년이 넘게 소요된 소송에서 고객은 건축업자를 자격 정지시키고 법적으로 파산 명령을 받아냈다. 물론 보험 회사에서 당연히 건축업자를 대신해서 손해보상을 해줄 것으로 알았으나, 그 ‘당연히’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동차 보험에 너무 익숙해져서 일까? CTTT에서 승소했으며, 다시 법원에서 재산을 차압하라는 명령까지 받았지만 보험회사의 자세는 애매모호 했다. 물론 법원의 결정이 보험회사의 지급명령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위라는 측면에서는 하나의 ‘법’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하지만 보험회사는 그러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의 재산 차압명령과 CTTT에서의 손해배상금 지급 명령은 ‘관련 자료’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준에 의해 건축업자의 부실 공사나 불완전 공사라는 증명이 될 때까지는 건축업자의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당히 ‘보험회사’다운 자세이다.

저토록 애매모호한 규정으로 무장을 하지 않았다면 거대 보험회사의 건물이 하늘을 찌르도록 높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업자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고, 고객은 건축업자가 보험에 가입되어있다는 증명서를 받았다.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보험금을 청구했으며, 보험회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재판을 시작하고 한번도 본적이 없는 건축업자가법원의 명령이 내려지는 마지막 날 모습을 드러내었다. 자신의 재산 차압 명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변호사가 없이 직접 출두하였다. 중년의 건축업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변명부터 했다. 야속한 마음에 말을 건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일어주어야 했다.

우리 고객이 자신을 이러한 상황에 놓이도록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법원의 명령에 반대를 해서 시간을 연장할 경우, 추가 비용만 발생할 뿐이라는 사실도 거의 협박하듯 알려주었다. 체념한 듯, 법원에 명령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자신은 이미 가진것이 없으니 보험회사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라는 것이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거의 10만불에 해당하는 공사비를 받고도 고객의 건축공사를 마무리하지 않았다.셀 수 없을 정도로 타이르고 협박해도 꿈적도 않던 건축업자는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정도로 준비는 해 둔것 같았다.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을 배우자의 이름으로 이전했고, 차량도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이 된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재산 차압명령이 그대로 멈추지는 않는다.

지금쯤, 관련 기관에서 재산 조사를 하고 있을 것이며, 법원 소환장을 받아들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보험회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많다.

일요일날 집에 있는 것 보다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그러한 두려움이 줄어들기도 하고, 또 경건한 목소리로 지난 일들을 회개하는 곳에 있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은 두려움이 있다면 월요일날 보험회사 문을 들어서는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보험회사 직원이 한달음에 달려와 고객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줄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미래의 행복을 확약 받은 것 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험회사 문을 나설 것이다.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라면서...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염려되어 보험에 가입하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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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법률칼럼 | 2011/04/01 11:32 |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많다. 특히나 자식을 바르게 키운다는 것은 부모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이며 어떻게 바르고 건강하게 자식들이 살아가는지 눈 감는 순간까지도 염려를 놓지 못한다. 자식을 제대로 길러 사회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게끔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크게 나아가, 이 사회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타이르고 가르쳐도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이 있다. ‘내 속으로 낳았지만 도무지 알수 없는’ 그런 자식들은 부모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상처이다. 영원히 아물지 않는…

학교에서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고, 거리에서 타인의 재산을 훔치다 경찰에 적발이 된, 이제 겨우 16살이 된 여학생이 아버지를 경찰에 고발했다. 폭행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으며, AVO까지 덤으로 받았다. 아버지와 딸의 사이에 이처럼 단단한 장벽이 생기게 된 것은 여학생의 무개념적인 행동이 이유였다.

모든 집안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귀중품이 타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에 의해 도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몇 년 전부터 알았다고 한다. 집안의 방에는 자물쇠를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이었으며, 어머니의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훔쳐가는 것은 그나마 예의바른 범행이었다고 한다. 돈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이 이 소녀의 범행 대상이었고 이처럼 많은 돈이 필요했던 것은 남자친구들과의 유흥비를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1
6살의 여학생에게 외박은 일상 생활중의 하나였고 금요일 저녁에 나가면 일요일 저녁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행선지를 밝힐 필요도 없이 그냥 파티에간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몇 년째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성년자인 여학생을, 그것도 자기집의 물건을 훔친다는 이유와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는 것으로 형사 처벌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건 당일, 어김없이 금요일날 파티에 간다고 나간 여학생은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직 한번도 체벌을 가해보지 않았고, 일류 사립고등학교에 입학 시켰고, 발레, 피아노, 등등,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었던 아버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까지 온 것이다.

손과 발을 회초리로 때렸다고 한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회초리로 자신을 때렸다는 이유로 딸은 금속 집기를 들어 아버지에게 던졌다. 피하지 않았다면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딸은 아버지가 방을 나서는 순간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후 여학생은 너무나 당당하게 집을 나갔다고 한다. AVO가 그렇게 고마웠을까? 그것도 아버지를 상대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내었고 더이상 아버지의 ‘간섭’이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억압에서 해방된 느낌이었을까?

정해진 날짜에 맞춰 법원에 가야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식을 때렸다는 이유로 판사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식을 훈계하려 한 것은 정당했다고 항변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이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이 무슨 죄일까? 폭행? 우스운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재판을 빨리 끝내자고 했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를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것보다 딸을 마음속에서 지워야 하는 고통이 그를 더 힘들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기다림과 인내(忍耐)라는 개념들이 모두 허위였고, 인생에서 최선이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에 깊은 좌절을 느낄 것이다. 범죄를 다루고 있는 법전(法典)에는 왜 아버지가 느끼는 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라든가, 울면서 든 회초리라든가, 아니면 자식에게 체벌을 가하면서 부모가 느끼는 고통에 대한 것은 언급이 없는 것일까? 저 한 권의 법전이 현명하게 답을 줄 수 있는 범죄가 과연 몇개나 될까?

텅 빈 방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느끼는 절망감을 어린 딸이 알아줄 날이 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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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년…

칼럼/법률칼럼 | 2011/03/25 10:45 |

폭행이나 폭언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보호책을 강구하고자 할때 많은 이들이 형사처벌까지는 아니지만 피의자에게 강력한 경고메세지를 보내 달라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즉각적인 고소나 고발로 이어질 경우, 형사처벌로 바로 직결되지만 보통의 경우, ‘겁’만 주고자 하는 고객들이 많다. 특히나 가정 폭력으로 인한 사건일 경우 AVO가 필수적으로 따라 붙으며, 관련 형사사건과 AVO가 동시에 처리되기에 간혹 피해자의 바램보다 더 심각하게 처벌이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우자가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에 동정심이 발동한 피해자들이 가끔씩 형사사건은 무죄 주장을 하고 AVO만 내려지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변호사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임시 AVO가 경찰관들의 손에서 이루어진다고 경찰관들이 AVO를 취소할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시행중인 AVO의 취소, 변경은 판사의 명령없이는 불가능 하다.

AVO 에 의해서 보호되는 사람을 PINOP(Person In Need Of Protection)이라고 부른다. 피해자라기 보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 정식 명칭이다. 담당 경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해보지만 별 효과는 없다. 더군다나 배우자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의 진술 번복은 법정에서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협박이나 강압에 의한 것일 확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Apprehended Personal Violence Order라는 것도 있다. 사실 AVO는 결혼을 한 배우자나, De facto relationship(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Living under the same roof’(한 지붕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적용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 제 삼자나 친구라면 APVO를 신청해야 하며, 신청 절차는 AVO와는 조금 다르다.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참을수 없는 폭행과 폭언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한 고객이 있었다. 즉각적인 처벌을 생각했지만 그러한 일에 연루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 처벌을 미루고 있었지만, 일정정도의 경고 메세지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형사처벌을 원하지는 않지만 APVO를 신청해서 자신을 일정정도 보호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APVO, 역시도 법정에서 판사님의 최종 판결이 있어야 하며, 관련자들이 모두 출두해서 필요한가 아닌가를 다투어야 하는 문제이다.

결국 고객은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와 평판을 우려해서 법적인 처벌을 미루겠다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경찰서에서 담당 경찰이 조서 작성을 위해 펜과 수첩을 꺼내는 그 순간에 말이다. 허탈한 경찰은 이유를 물었고, 고객은 자신이 그러한 일에 연루된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부는 밤늦은 시간, 경찰서를 나오는 고객의 마음은 허전했을 것이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이다지도 큰 장애가 되고, 어처구니 없는 폭언과 폭행 앞에서 ‘나는 억울한 피해자다’라고 말하는 것이 끝내 두려웠던 그는 마음속의 분노까지 바람에 날려보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달래려 미안하다고 했지만 무엇이 미안한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고스란히 마음속으로 삭여야 하며, 그 힘든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자유로울 것이다.

얼마전 법정스님이 입적하신지 일년이 지났으며 법정스님의 유언에 따라 많은 양의 서적들이 소각이 된다고 한다.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려 했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의 사후마져도 정리를 하려한 그는 진정한 자유를 알고 있었으리라. 그가 떠난지 벌써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별을 부둥켜 안고 있다. 한번도 찾아주지 않은 이 마음에 이별을 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젠가 이 미흡한 마음에도 그가 찾아오리라 믿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무슨 연유로 이 힘든 세상에 와서 그러한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고 홀연히 가버린 것일까?

이 끝도 없는 그리움을 도대체 어찌하라고 그는 그렇게 가버린 것일까? 그는 모든 것을 버려야만 진정한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정, 그로부터, 아니 그의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을까?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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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ELY...

칼럼/법률칼럼 | 2011/03/18 10:39 |

중동의 나라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이집트를 시작으로 리비아 바레인 등, 중동의 주요 석유 수출국들의 장기 집권 지도자들의 철옹성 같은 권력이 도전을 받고 있으며, 해결 방법도 제각각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이 된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그에 대응하는 집권자들의 진압도 전쟁을 방불케하는 수준이다.

이집트와는 달리 리비아는 집권자가 자신의 권력을 지켜내는 형국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나 다른 서방세계의 제재조치가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상에서 불가능을 없을 것 같은 미국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져도 든다.

이런 나라들이 반란 세력이나 반군 세력들과의 교전중이기에 아마도 진압이 끝나고 나면 반란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반란죄로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좀더 규모가 작은 시위를 통해 체포가 되었다면 이들은 공공 질서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즉 공공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말이다.

특정 피해자가 있을 필요가 없이 공공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판단이 되면 경찰은 체포를 하고 기소를 할 수 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공의 질서나 이익을 위한다는 법들이 가끔 생사람을 잡을 때도 있다. 한때 호주에도 테러범에 대한 법 개정이 거의 악법 수준이었음을 새삼 말해야 무엇하며, 무고한 사람을 영국의 테러 사건에 연루시키는 바람에 호주 정부는 울며겨자먹기로 백만불이 넘는 피해보상을 해야만 했었다.

고객중에 이러한 공공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기소가 된 사람이 있다. 밤늦은 시간 친구들과 귀가를 하던중 시비가 붙어 양측 모두 피해자이고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먼저 폭행을 당한 고객은 달아나는 상대측 한명을 뒤따라 가서 보복 폭행을 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CCTV 카메라가 떡하니 지켜보는 아래에서 말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체포를 할 수가 없었다. 피해자라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CCTV 분석 후에 경찰은 우리 고객에게 공공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기소를 했다. 도망가는 피해자를 뒤따라와서 넘어뜨리고 계속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만을 놓고 보면 영락없는 난동이고 이유없는 일방적인 폭행으로 보였다. 고객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할 만한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은 아주 자랑스럽게 CCTV의 증거를 이유로 자신들의 기소를 정당화했다.

대단한 일을 하신 분들에게 어디 상장이라도 주어야 마땅한 일 아닌지 모르겠다. 과학 기술의 한 치 오차도 없는 기록과 민중을 사랑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막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경찰관들의 투철한 사명감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객으로 하여금 진실게임을 하도록 만들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피해자가 없으니 폭행으로 기소하지 못한것 아니냐며 약간 빈정거렸더니, 절대 아니라고 한다. 자신들은 폭행으로도 기소를 할 수도 있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무슨 배짱인지 모르지만 매일 접하는 인물들이 범죄자들과 변호사인 만큼, 경찰관들의 말로 둘러대는 기술도 상당한 수준이다. 고객의 부상정도는 경미했다. 그것으로 자신이 폭행을 먼저 당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 하며 난동을 부렸다는 혐의를 폭행혐의로 주장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고객이 한밤에 광란의 주먹을 휘둘렀다고 말하기에도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시내에서Hornsby로 가는 기차를 타면 Strathfield에서 Eastwood까지 All Stop으로 가기도 한다. 일전에 기차가 West Ryde에 정차하기 직전, Train Master는 방송을 통해서 This Station is ‘Denistone’이라고 한다. 다음 Denistone 역에서는 뭐라고 할 것인지 귀기울이던 차에, 그는 “This station is ‘DEFINITELY’ Denistone!”, 이라고 말하며, 민망한 웃음과 함께 그렇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고객의 사건도 ‘DEFINITELY’ Not Guilty라고 하면 판사님이 들어주실려나…..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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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칼럼/법률칼럼 | 2011/03/11 11:37 |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되어 법정에 가게 된 고객이 있다. 도저히 유죄인정을 못하겠다는 사연을 듣고 무죄주장을 하기로 했다. 사실 음주 운전을 무죄로 주장하고 재판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혈중 알코올의 수치가 엄연히 존재하고, 경찰의 입회하에 그러한 Test를 하는데, 무죄주장을 할 만한 근거가 쉬이 있겠는가 말이다.

보통은 혈중 수치가 적게 나오던가, 아니면 상당히 교묘하게 상황을 모면하려 일부러 약하게 분다던가 하면, 경찰은 음주 측정 거부라는 죄명으로 가장 높은 수치로 처벌하려고 한다. 흔히 있는 일이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피의자의 혈중 알코올이 0.04가 나왔다면 경찰은 십중팔구 측정 거부 죄명으로 법정으로 보내어 버린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측정기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혈중 알코올의 농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폐가 좋지 않다든가 아니면 병을 앓고 있다든가 하면 경찰 입장에서는 피의자가 음주 측정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버리게 된다.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을 해도 술냄세를 풍기면서 경찰서에서 ‘나는 폐에 문제가 있어요’라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있게 들리겠는가? 그것도 새벽녘에 반대차선에 정차한 정신줄 놓은 운전자라고 낙인을 찍어놓은 뒤에 말이다…

하지만 정말 폐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야기이며 고객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가족들과 뒷마당에서 즐겁게 바베큐와 와인 몇 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저녁늦게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이 깨어 머리를 식힐 겸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차를 운전하고 갔다.

공원 입구로 진입하려다 앞에 세워진 차량의 불빛에 눈이 부셔 다시금 돌아나오려다 그만 반대쪽 차선에 정차를 하고 말았다. 홧김에 따지려 돌아보니 경찰차량이었다. 늦은 시간 여려명의 경찰이 공원을 수색중이었던 것이다. 경찰은 반대쪽 차선에 정차한 고객에게 주의를 주었고, 곧바로 뒤따라와서는 음주 측정을 하였다.

두 세번을 측정하던 경찰은 음주운전으로 체포한다는 말과 함께 고객을 경찰서로 연행 했다. 경찰서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자 담당 경찰관은 수치가 그리 높지 않으니 최선을 다해서 측정에 응해 달라는 부탁까지 하면서 고객을 독려했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측정기를 보면서 고객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멍청한 측정기와 자신의 판단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경찰관 덕분에 고객은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당연히 무죄 주장을 할것이다. 고객은 측정기를 만족시킬 만큼 건강한 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호흡 조절이 곤란하며, 풍선을 불어도 다른 건강한 성인들 만큼 불지 못한다. 고객은 폐 결핵을 앓은 적이 있고, 잔디와 곰팡이로 인한 Allergy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찰서에서 고객은 자신의 치료 기록과 자신이 측정기를 충분하게 불 수없는 설명을 해도 담당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단지 몇 잔의 와인으로 인해서 의학적으로 비 정상적인 폐를 가진 사람이 경찰의 음주 측정에 협조하지 않은 범법자로 둔갑된 것이다.

한여름의 열기가 차츰 사그라 들고 간간히 찬바람도 분다. 가을인가? 저 끝도 없는 들녘 어디에선가 짚을 태우고 그 옆에는 볕 바라기를 하는 빠알간 고추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해를 마무리 하는 농부들의 어깨에도 잠시나마 휴식이 찾아올 것이고, 그 추수 끝난 들녘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며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킬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륙 어디에선가 고단한 한해를 마무리하는 농부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다시 내년을 바라보고 볍씨를 주무르지 않겠는가?

상처가 있다는 것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추수가 끝난 뒤에도 아들놈 학비가 모자라는 부모의 마음에 난 상처를 그 아들인들 알 수 있으랴! 하물며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그 상처보다도 더 아픈것은 아프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더 큰 상처를 안게 될까봐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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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칼럼/법률칼럼 | 2011/02/24 19:55 |

끝 닿지 않을 먼 곳에 살아도 마음 한곳에는 고국의 설날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 한국에서 자란 우리들에게 설날은 그냥 음력 1월 1일이 아니다. 중국인들의 잔치이든 몽고인들의 잔치이든,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설날 축제를 한다고 한동안 시내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국인들의 설날이 중국의 명절과 같은 날이라고 그날을 즐기는 마음마져 같을 수는 없다. 이 ‘설날’이라는 한국인들의 명절에는 동족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특유의 ‘흥’이라는 것이 있다.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무사히 치뤄진 행사를 보면서 그 ‘흥’이라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졌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 ‘설날’이라는 단어가 주는 흥겨움을 이해할 수는 있을까?

민족의 대 이동이라고 표현하는 귀성객들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시골로 향하는 수많은 자가용 차량들…우리에게 설날이란 그냥 Happy New Year!가 아니리라. 우리가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진한 향수가 베어 나오고, 아직도 그곳을 지키는 노부모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그런 날이 아니던가?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야 하는 날이 그날이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설날에는 가족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며 풍습이다.

호주에서 자란 한국계 변호사가 있다. 어느정도 한국어를 알아듣기는 하지만 한국어를 말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자신이 한국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껴본적이 없다고 했다. 최소한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과 한국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호주에 한번도 와보지 않은 참한 규수를 아내로 맞이한 그에게 한국인 아내를 맞이한 이유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한국사람입니다’. 어눌하지만 한글자 한글자 나즈막히, 하지만 강한 어조로 이야기 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잊고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호주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이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토록 가슴아프게 다가올 줄 몰랐고, 그러한 이유로 한국인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아쉬운 것 하나 없어보이던 그가 이러한 얘기를 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가슴이 아팠다.

호주에서 자랐지만 그의 마음속에 호주의 문화는 그리 쉽게 녹아들지 않았다. 언어는 문화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이방인들이 문화를 흡수하고 동화되기에 그가 지내온 시간은 충분하지 않은 듯 했다. 긴 시간동안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골 깊은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채워주지도, 또 채워 줄수도 없는 그러한 빈자리를 그는 참으로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순수함이 그를 방황하게 만들었으며, 세상의 질서에 한가닥 의문을 가지게 했으리라. 그래서 그가 흔들렸을 것이고, 그 방황의 끝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았고, 그러한 이야기를 할 때 묘한 안도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말을 가르칠 것이며, 자신이 한국인임을 인식시켜 줄 것이라고 했다.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려는 그의 마음이 변호사의 길로 오게 했고, 그는 지금도 형제애를 실천하려 애쓰는 신앙인이다. 그런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지 않았고, 먼 기억속의 모국에 대한 향수를 되찾은 그를 보면서 아직은 절망하기 이르다는 생각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절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이미 철저하게 타락했다는 증거 아닌가?

El Khan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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