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 영국 죄인 선단이 시드니에 상륙한 이래 영국은 1829년부터 호주 대륙을 대영 제국의 영토로 인정하고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원주민포함)해서 British subject(대영제국 국민)으로 간주하여 왔다. 그러나 1901년 호주가 독립하고 만든 헌법에는 “원주민은 호주 시민이 아니며 투표를 할수 없다”고 명시 되었고 뿐만 아니라 백인들은 아시아나 남태평양 지역 및 타 인종이 사는 지역도 구별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연방수상이였던 “에드몬드 바튼(Edmund Barton)는 직업에도 백인들을 우대하는 법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호주 원주민들은 백인들에게 심한 차별대우를 받아오다가 1967년 5월 27일, 국민투표(Referendum)에서 90%이상의 찬성으로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을 인정했으며 인구조사에도 포함하기로 했다. 아울러 연방정부는 원주민보호와 후생복지를 위해 적극적인 법을 만들 수 있다는 법에도 찬성 투표를 했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그간 원주민들에대한 헌법상의 불평등 조항 삭제와 원주민 땅을 돌려주기 (land Right)에서 미온적이여서 4명의 원주민 청년(Tent Embassy)들은 1972년부터 국회의사당에 텐트를 쳐 놓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를 수행하라고 데모를 벌리고 왔다.
올해 이민의 날 40주년 기념식에서 길라드 수상 보좌관이 토니 아버트 야당당수가 ”데모대들을 물리쳐야한다.“고 원주민들에게 이야기를 함으로써 훙분된 원주민들의 과격한 데모로 길라드 수상이 구두 한짝이 버려진 채 건장한 경비원에 안긴 모습를 보였다. 잘못 전해진 정보로 담당 보좌관은 사임을 했고 길라드 수상의 인기는 크게 하락하였다. 현 정부는 2010년 선거에서 원주민들의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 투표(Referendum)을 2013년 선거 전에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준비를 위해 원주민 대표와 각계 인사들이 1년간 250번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 초안을 300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하여 지난 주 이민의 날 길라드 수상에게 전달 되었다.
대략적 내용을 살펴보면
(1) 호주대륙과 섬들, 오늘날 호주 땅은 처음에 원주민과 토리스 해협 섬 사람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2) 호주 원주민과 토리스 해협 섬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땅과 바다를 인정해야 한다. (3) 호주 원주민과 토리스 해협 섬 사람들의 문화, 언어를 존경해야 한다. (4) 연방 정부. 주 정부는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어느 국가 등 차별해서는 안된다 (5) 호주 원주민이나 토리스 해협 섬 사람들의 언어가 근본적인 호주 언어이며 국가 유산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등이다.
과연 백인들이 이런 조항을 인정할 것인지는 의심이 난다. 호주 역사상 국민투표(Referendum)를 44번 치루었으나 성공은 8번에 불과 하였다. 원주민의 수는 2006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호주 원주민과 토리스 해엽 섬사람들을 합하여 455.028명이다. 대부분 혼혈된 상태이고 4만-5만명만 순수한 원주민이라고 한다. 호주 원주민들은 대략 4만-7만년 사이에 호주에 정착한 것으로 추산된다. 마지막 빙하기 시대는 현재 보다 바다가 무려 50m가 낮기 때문에 동남아 지역에서 온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가 농업 방식을 발전시킨 것이 1만여년 정도로 본다면 농업 기술을 배우지 않고 불을 이용하고 사냥이나 자연상태의 식물을 줍는 기술 정도 였을 것이다. 시드니에서 서북쪽 760Km 떨어진 Mungo Lake(문고 저수지)는 지금은 거의 사막이 되어 못쓰는 땅이지만 2-3만년전에 호주 원주민들이 살았던 저수지 이다. 이곳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남자와 여자의 화장된 무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1788년 이후 이땅을 백인이 차지하고부터 원주민들의 고난이 심했다. 타스마니아의 원주민은 백인의 의해 거의 몰살을 당했고 백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많은 원주민이 사망했다. 원주민들은 자기 땅을 빼앗기고 정부가 정해준 곳에만 살아 왔다.1967년 국민투표(Referendum)를 실시하여 투표권을 얻었지만 백인으로부터 인종편견을 당하기도 하고 백인보다 실업율이 3배나 높고 건강문제도 백인평균 수명보다 10-17년이나 짧고 더욱이 교육문제는 더 심각하다. 아직도 먼 거리에 사는 원주민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원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의 땅을 달라는 것이다. (Land right) 원주민들이 생활을 위해 자기내 땅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조상의 성스러운땅과 사냥을 위한 터전등을 요구하여 1992년의 Mabo라는 토리스스테트인은 자기네 부족이 사냥하고 살았던 원래 섬을 자기에게 돌려 달라고 해서 호주 대법원이 이를 수낙했다.무엇보다도 백인들이 경찰을 동원해서 백인화 교육을 시킨다고 원주민 어린이들을 엄마 품에서 강제로 빼앗아 종교단체나 다른 백인 가정에서 양육하게 하였다. 그러나 목적과는 달리 성폭행당하고 강제노동을 당해 그들에게 백인은 원한의 대상이였다. 그런 아픔을 겪은 세대가 25년 이상(1940-1969) 10%이상의 원주민(십만 명 이상)이었다. 이로 인해 1997년, 먼저 종교단체인 카톨릭과 앵그리칸 교회에서 사과를 했고 정부는1998년 5월 26일 최초로 쏘리데이(SorryDay)가 지정되는 역사가 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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